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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서평] 『제국의 슬픔』(2004): 미국 제국주의는 정말로 몰락할 것인가?

by 김고기 님 2024. 4. 12.

미리 세 줄 요약

 

① 『제국의 슬픔』은 미국사 전반을 통해 미국 제국주의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설명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군산복합기업'이다.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군산복합기업은 정치와 언론에 교묘하게 개입하며 미국을 군사기지 제국으로 만들었다.

 

②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한 추종은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지속되는 전쟁, ▲민주주의의 후퇴, ▲거짓 정보의 범람, ▲경제적 파산으로 이어져 미국을 몰락의 길로 이끌고 있다.

 

③ 이러한 "슬픔"을 막기 위해 저자는 의회의 개혁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이 당위적인 주장을 넘어 정말로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목차>


  1. 들어가며: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인가?
  2. 미국 제국주의의 성립
  3. 군사기지 제국
  4. 무엇이 제국주의를 확산하는가?
  5. 네 가지 슬픔
  6. 나오며: 반쪽의 대안

 

1. 들어가며: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인가?

 

돌이켜보건대 정치학을 공부하기 전, 그러니까 학창 시절 나에게 미국이라는 국가는 몇 가지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먼저 왜 美國, 그러니까 “아름다운 나라인가?” 하는 의문. 다음으로는 9·11 테러의 충격. 마지막으로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건. 각각의 인상을 하나로 엮는 데에는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어린 마음에도 미국이 썩 좋은 국가는 아니라는 인상만큼은 분명히 존재했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여중생 압사 사건 이후 한국 내에서 촉발된 반미 정서는 제도권 교육을 훌륭히 수행해왔던 어린 학생들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불태우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제나처럼 들리던 표현이 있다. 바로 미국 제국주의.

 

사실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듣던 말이었던 탓일까? 여타 여러 사회과학 개념이 그렇듯 ‘제국주의’ 역시 명확한 개념의 합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미국이 정말 제국주의 국가가 맞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는 한편으로는 미국이 제국주의의 전형, 즉 19세기 선발 산업 국가들의 식민주의·제국주의와 분명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제국의 슬픔』(2004, 원제: The Sorrows of Empire)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인가? 미국이 지금까지의 여타 제국주의 국가들과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는가?

 

찰머스 존슨&#44; 제국의 슬픔
<그림 1> 찰머스 존슨, 2004, 『제국의 슬픔』, 안병진 옮김, 삼우반.

 

2. 미국 제국주의의 성립

 

찰머스 존슨이 제시하는 제국주의의 핵심 속성은 국가의 의사 결정과 행위에 있어서의 일방주의다. 미국은 지금까지 핵 확산 금지 조약,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 탄도 미사일 금지 조약 등 (명목적으로나마) 세계평화를 위한 다양한 조약을 위반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국제형사재판소를 끝내 비준하지 않고 있다. 존슨은 이를 미국이 자신들이 행한 행위에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상징이라 표현한다.

 

존슨이 제시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기원은 18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해군 전함 USS 메인이 아바나 항구에서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불명확한 원인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적극적인 전쟁 열기 고취와 더불어 많은 미국인들은 이를 스페인 기뢰 탓으로 돌렸고, 결국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그 결과 괌, 필리핀 등 태평양의 스페인령 섬들을 할양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로의 발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1911년에 인양된 USS 메인의 잔해
<그림 2> 1911년에 인양된 USS 메인의 잔해. 침몰 원인은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사건은 미국-스페인 전쟁의 직접적인 방아쇠가 되었다. (출처: National Archives)

 

그러나 미국의 특수한 제국주의 행보가 처음부터 드러났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군사적 지배는 처음에는 구대륙 국가의 착취로부터 아메리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소련 성립 이후에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세계를 지켜낸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제국주의를 은폐해왔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자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공세도 차츰 힘을 잃게 되었다. 존슨은 미국이 소련 붕괴와 더불어 제국주의를 버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미국은 제국주의를 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신국가안보전략‘을 통해 군사기지 제국이라는 새롭고 기괴한 형태의 제국주의로 귀결되어버린다.

 

3. 군사기지 제국

 

존슨은 군사기지 제국의 실상을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직접 제시하고 있다. “우리 미국은 50만이 넘는 병사와 스파이, 기술자와 교관 및 그 가족들과 민간 계약자들을 다른 나라들 그리고 5대양 6대주에 나가 있는 10여 개의 항공모함 기동함대에 배치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의 영토 밖에서 수많은 비밀 기지를 운영해 왔고, 이러한 기지들을 통해서 미국 국민을 포함한 각국 국민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팩스 및 e메일 내용까지 모니터하고 있다.”(15~16쪽)

 

존슨이 보기에 미국의 군사기지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본질인 동시에 특이점이다. 미국은 과거의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식민지를 직접 점령하거나 통치하는 대신 배타적인 군사기지를 세웠다. 이 기지를 통해 다양한 첩보·군사 활동을 벌여 식민지를 간접적으로 지배한다. 군사 기지는 그 성격으로 인해 행정부와 민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늘날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우회하여 제국주의의 지배를 강화하기에 최적의 수단이다. 군산복합체와 연계되면 그 효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세부적인 내용은 언제나 기밀이라는 명목으로 은폐된다. 군사기지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새 제국주의는 따라서 필연적으로 군국주의로 이어진다.

 

미국 군사기지가 존재하는 국가 및 기지의 위치
<그림 3> 2022년 기준, 미국 군사기지가 존재하는 국가 및 기지의 위치. (출처: Wikimedia Commons)

 

존슨은 다음 세 가지 점을 들어 미국이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첫째, 직업 군인 계층의 출현과 이들의 이상에 대한 미화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전쟁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과 여론을 확산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포함한다. 둘째, 정부 고위직 등의 핵심 정책결정자들의 상당수가 군 장교, 혹은 군수산업 대표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군 합동참모본부장 출신 파월 국무장관, 록히드 마틴 CEO 출신 피터 티츠 공군 차관 등이 그 사례이다. 셋째, 군비가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매해 압도적이고 막대한 군사예산을 집행하면서도 그마저도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왔다는 점은 미국의 군국주의적 성격을 증명한다.

 

4. 무엇이 제국주의를 확산하는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미국의 제국주의화, 군국주의화를 추동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존슨이 지목하는 세력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통령과 국방성이다. 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예산 집행권을 통해 세력을 강화하고, 기밀이라는 명목으로 정보를 감추고 허위 정보를 흘림으로써 의회를 우회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이처럼 암약하는 정치 세력·국가 기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국가의 행위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군산복합기업’이 핵심이다. 주로 퇴역 장교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의 군산복합기업은 단순히 무기나 전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넘어 군대를 훈련하거나 용병과 경찰을 임대함으로써 사실상 준군사 조직으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업들은 이제 각지의 군사기지를 유지·보안하는 업무를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군사기지를 직접 건설하는 업무까지 진행하고 있다. 의회와 국민으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사설권력이 군사기지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초법적이고 견제받지 않는 민간 군사 권력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존슨에 따르면 군사적 기능을 갖춘 민간 기업은 35개에 다다르며, 바로 이들이 오늘날 미국의 군국주의를 이끈 주범이자 특이한 미국의 제국주의를 구성한 핵심 세력이다. 존슨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군산 복합체는 점점 과잉 생산능력을 가지고 비대해지면서, 더 자주 ‘먹어야’ 하게 되었다. 새로운 기지를 세우게 되면, 새로 세운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더 많은 새로운 기지가 필요하게 되고, 그리하여 군국주의와 전쟁, 무기 판매, 기지 확장이란 더욱 꽉 짜인 순환이 생기는 것이다.”(286쪽) 이후 존슨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침공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한다.

 

록히드 마틴의 F-35 소개 자료
<그림 4> 대표적인 군수기업인 록히드 마틴의 F-35 소개 자료. 전쟁의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존슨의 주장과는 달리 군산 복합체가 정말로 전쟁을 바라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반박이 존재한다. 아무래도 군수기업이 바라는 것은 전쟁 자체보단 대치와 냉전, 그리고 군비경쟁에 가까울 것이다. (출처: LOCKHEED MARTIN)

 

여기까지만 본다면 존슨의 접근은 자본주의 기업에 대한 그럴 듯한 음모론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존슨의 통찰이 빛나는 부분은 다음 부분이다. 그는 이 같은 초월적인 군산복합체의 등장과 운용을 다만 한 개인이나 세력의 일탈에 돌리지 않고, 미국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제시한다. 즉, 미국의 군국주의화가 클린턴과 부시, 혹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문제를 지나 하나의 구조적 문제로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오고 4년이 지나 미국에서 민주당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여전히 세계각지의 미군 기지는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존슨의 지적은 분명히 타당했다.

 

5. 네 가지 슬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한 추종은 미국을 압도적인 제국으로 만드는 데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경향은 동시에 제국이 붕괴할 조건을 잉태했다. 존슨이 말하는 제국의 슬픔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제국이 되었지만, 제국이 되었기에 붕괴할 수밖에 없는 조건 또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존슨은 이러한 조건을 네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항구적인 전쟁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더 많은 테러, 더 많은 9·11 사건, 그리고 더 많은 국민의 희생을 의미한다. 둘째, “의회는 완전히 무력”화될 것이고, 펜타곤이 행정부를 장학하게 됨으로써 “민주주의의 후퇴와 함께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실종”될 것이다. 셋째, 진실된 정보는 사라지고 “선전 체계와 허위 정보, 그리고 전쟁과 권력 및 대규모 군대에 대한 찬양이 들어설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대 군사 프로젝트에 자원이 집중됨에 따라 “국민들의 교육과 보건, 안전은 경시”되고, “경제적으로 파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들어 존슨은 미국 제국의 붕괴를 이야기한다.

 

브라운대학 부설 왓슨 연구소가 추산한 &#39;테러와의 전쟁&#39; 비용
<그림 5> 미국 브라운대학 부설 왓슨 연구소가 추산한 '테러와의 전쟁' 비용. 연구소는 20여 년 간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에서 90만 명이 희생되었고, 9,4000조 원의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했다.

 

그렇다면 책이 나온 후 10년 이상이 더 흐른 시점에서 각각의 논점을 점검해보자. 먼저 9·11 테러와 같은 초대규모 테러는 다행히도 재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테러의 위협이 사라지거나 최소한 작아진 것도 전혀 아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에서와 같이 미국이 개입주의를 견지하며 전선을 확대하는 이상 테러 역시 줄어들 수 없다는 것은 사실 분석이나 의견의 아닌 상식의 영역일 것이다. 무엇보다 중동에서 ISIS의 탄생과 활동은 미국의 그간 대테러 억제 정책이 큰 실효성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해서는 애국자법 논쟁으로 갈음될 수 있을 듯하다. 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의 주도하에 발의된 이 법은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부에서도 연장되었다. 2015년 일부 독소조항이 삭제되고 '자유법'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요건이 강화되었을 뿐 도청과 감시라는 본질적인 요소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 애국자법을 비판하는 장면
<그림 6>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 애국자법을 비판하는 장면.

 

세 번째, 언론에 대해서는 사실 점검이라 말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먼저 일상적으로 미국 대중매체와 여론을 접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전쟁과 군대에 대한 미화와 찬양은 현대 민족주의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경향이며, 무엇보다 당장 한국 언론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미국 정도만 하더라도 굉장히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언론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비판 방송이 가능하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문화가 부럽게까지도 느껴진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네 번째의 경제적 요소일 테다. 굳이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극심한 양극화가 미국의 몰락과 다음 헤게모니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불러온 것을 목격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국내적으로는 오바마 케어와 같은 복지의 확대였고, 국외적으로는 “동맹국의 공정한 기여”로 대표되는 군축이었다. 즉, 제국을 유지하는 한 축에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미국의 다음 대응은 무엇인가? 기름칠과 보수를 통한 제국의 유지인가? 혹은 제국의 해체인가? 이 이야기를 존슨이 제시하는 대안과 함께 결론에서 제대로 이야기해보자.

 

6. 나오며: 반쪽의 대안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분석과 진단에 비해 존슨이 제시하는 대안은 지극히 간단하다. “국민들이 의회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의회를 특수한 이익을 가진 자들의 포럼으로 전락시킨 부패한 선거법을 의회와 함께 개혁하여, 그래서 진정으로 민주적인 대의 기구로 거듭 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펜타곤과 비밀정보기관들에 대해 돈줄을 끊는 것이다.”(416쪽) 얼핏 보기엔 지극히 당연하고 그래서 무의미하게까지 보이는 이야기들이다. 존슨 역시 이러한 개혁이 실제로 가능할지에 대해 “상상하기 어렵다.”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있다.

 

아쉽다. 분석적인 측면에서 군산복합체의 문제점에 대해 엄밀하게 지적했음에도 정작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것을 비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저서와 인터뷰 전반에서는 그간의 미국 국제관계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의 선회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정작 전공이었던 경제에서는 미국식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이어졌던 것일까?

 

국민들이 의회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한다는 말은 혁명으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말만큼이나 공허하다. 국민은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무엇보다 민주적인 대의가 반드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반하는 것이란 법은 없다. 저자 자신이 직접 지적했듯이, (타락한 언론의 영향이라 할지라도) 어떤 국민은 전쟁과 군대에 열광한다.

 

Z 문양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 지지 퍼포먼스를 벌이는 러시아인들의 모습
<그림 7> Z 문양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 지지 퍼포먼스를 벌이는 러시아인들의 모습. 어떤 식으로든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폭등하기 마련이다. (사진: Данил Айкин / ТАСС)

 

결과적으로 대안이 대안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좀 더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미국 경제 구조에서 군산복합체는 어떠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가? 금융과 군사 산업 말고는 더 이상 자체적인 생산을 하지 않는 미국의 구조에서, 군산복합체와 펜타곤 관료의 결합은 단순한 역사적 경향, 혹은 특정 기업·산업의 일탈을 넘어 미국이 유지되는 토대 그 자체에 좀 더 가깝다.

 

질문을 바꿔보자. 군산복합체가 사라진다면 미국 경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와 군산복합체의 연계는 개별 기업과 관료의 탐욕이라기보다는 오늘날 미국 경제가 작동하는 기작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제국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 선거를 잘 하고 의회를 개혁하는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나 역시 알 수 없다. 다만 진정한 대안은 이렇듯 본질적인 구조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국에 대한 분석이다. 존슨 그 자신이 한국전쟁에 참여해서이기도 하겠고, 또 북한과 대치중인 미군의 최전선인 만큼 한국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겠지만 책 속에는 한국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깊이 있는 분석과 접근이 제시되어 있었다. 특히 다음 부분을 읽을 땐 감탄이 나왔다. “그렇지만 남한에서 가장 놀랄 만한 시설은 용산 육군 주둔지이다. 미국의 문화적, 역사적 무신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곳은 1894년 들어선 구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자리로서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한 증오를 상징하는 곳이다.”(130쪽) 문득 미국 제국주의라는 것이 우리 삶과 관련 없는, 책과 이론 속의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 글은 2022년 4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갱신된 사실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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