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의 반대자들] 5.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by 김고기 님 2023. 6. 16.

<목차>


  1. 플라톤: 민주주의는 나쁜 정부를 산출하게 된다
  2. 엘리트주의자: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환상이다
  3. 고전적 자유주의자: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적이다
  4. 가세트·탈몬: 대중정치는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5.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6. 나오며: 그들은 왜 민주주의를 비판했나?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의 손에 망하고, 민중을 따르면 민중과 함께 망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46?~120?)가 남긴 말이다. 이는 대중을 완전히 거스를 수도, 완전히 따를 수도 없던 당시 민주정의 특성을 잘 나타낸 말이라 하겠다.

 

플루타르코스
<그림 14> 그리스 카이로네이아에 위치한 플루타르코스의 흉상. 철학자이자 작가로서 그가 남긴 전기는 고대 유럽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정치가 될 수는 있어도, '인민을 위한' 정치는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대중이 가지는 필연적인 속성, 즉 열정과 직관이 지혜와 이성보다 앞서게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포퓰리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대립은 대중에 대한 두 세력의 인식 차이를 잘 보여준다.

 

포퓰리즘: 대중영합주의 대 민중주의

 

현대 정치학에서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는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대중영합주의', '대중선동정치', '대중동원정치'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대중 자치의 가능성과 대중의 정치적 영략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중은 정치적 사안과 정책의 시행에 있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정치가들은 현실적 조건을 무시한 채 원초적인 공약과 정책으로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이 오랜 기간 우파 세력의 수사로 사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반해 포퓰리즘을 '인민주의', '민중주의' 등으로 인식하며 포퓰리즘의 긍정적 기능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팩스턴(1932~ )과 영국의 정치학자 로저 그리핀(1948~ )은 전자의 시각에서 포퓰리즘을 파시즘의 본질적 요소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1935~2014)와 영국의 정치학자 마거릿 캐노번(1939~2018)은 후자의 시각에서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로 파악한다.

 

로저 그리핀
<그림 15> 로저 그리핀 교수의 초상. 영국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교 현대사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파시즘'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리핀에 따르면 파시즘의 본질은 포퓰리즘적 민족주의이다. (출처: John Cabot University News)

 

이와 같은 극단적인 시각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에 내재된 모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은 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을 엘리트와 '동질한 인민' 집단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축소시킨다. 그러므로 실제로 인민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의 서로 상충되는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동시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 자발적인 인민 조직을 와해시키고, 인민을 위해 무언가를 실천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을 독점한다. 포퓰리즘에 대한 인식 차이는 이처럼 현대 대중정치 사회에서 포퓰리즘이 가진 모순적인 두 특성, 즉, 인민에게 주권을 되돌려주는 동시에 인민을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최근 포퓰리즘을 현대 민주주의의 새로운 양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결국 포퓰리즘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일으키는 대중의 객체화를 외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문제는 결국 이념과 정책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개인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문제로 환원된다. 포퓰리즘은 차라리 슘페터가 언급한 엘리트 간의 경쟁에 의한 민주적 엘리트주의 모델에 가깝지, 이를 민주주의라고 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계속)

 

 

<참고문헌>


앤드루 헤이우드, 2007, 『현대 정치이론』, 이종은·조현수 옮김, 까치글방.
양재인, 1990, 『한국정치엘리트론』, 대왕사.
얼빙 짜이틀린, 2006, 『서회학 이론의 발달사』, 이경용·김동노 옮김, 한울아카데미.
윌리엄 사하키안, 2003, 『서양철학사』, 권순홍 옮김, 문예출판사.

 

 

※ 이 글은 2010년 8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lettere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