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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역사12

[혁명의 러시아사] 대개혁과 농노 해방 II. 러시아 제국의 굴절 조국전쟁과 데카브리스트의 난 크림 전쟁의 패배 대개혁과 농노 해방 러시아에서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 전체 목차 및 참고문헌 보기 표트르 대제 시기 비약적인 국가 발전의 기반이었던 농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 발전을 옥죄고 있었다. 18세기 이후 상당 기간 농촌의 단위 생산량은 성장하지 않았으며, 1860년을 기준으로 러시아의 헥타르당 식량 생산량은 영국의 40% 수준에 머물렀다. 지주들은 농노에 대한 심한 매질과 낮은 급료를 통해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한편 19세기 중반을 넘어설 때부터 러시아에서는 이미 혁명의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1860년에만 해도 농민을 중심으로 한 폭동이 108건이나 발생하였다. 짜르 정부.. 2024. 4. 16.
[혁명의 러시아사] 크림 전쟁의 패배 II. 러시아 제국의 굴절 조국전쟁과 데카브리스트의 난 크림 전쟁의 패배 대개혁과 농노 해방 러시아에서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 전체 목차 및 참고문헌 보기 흑해 진출을 위해 투르크와 전쟁을 준비하던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년)는 이내 유럽의 반발을 마주하게 된다. 곡물 수출을 위한 흑해 창구를 확보하려던 러시아에 대해 투르크와 영국, 프랑스 등이 동맹을 맺고 전쟁을 감행한 것이다. 이 전쟁이 바로 나이팅게일과 톨스토이를 통해 잘 알려진 ‘크림 전쟁’이다. 자신만만하던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한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전염병을 구제"한다던 유럽의 헌병은 어느새 종이 병정이 되어 있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패배의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시.. 2024. 3. 28.
[서평] 『제국의 미래』: 관용이 제국을 만든다 미리 세 줄 요약 ① 『제국의 미래』(2008)는 2,500년 인류 역사를 '관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되돌아본다. 이를 통해 "다원주의적 관용", 즉 다른 국가·민족·인종을 포괄하는 관용을 가진 국가만이 '제국'이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② 미국이 현대의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미국이 종교적·시민적 자유를 위해 새롭게 건국되어 이민자들로 구성된, 본질적으로 관용적일 수밖에 없었던 국가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 '관용'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이 몰락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진단한다. ③ '관용'의 관점에서 저자는 다음 제국의 후보로 '인도'를 제시한다. 관용이 정말로 제국을 만드는 독립변수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의심스러우나, 최소한 문화적 다양.. 2024. 3. 9.
[서평]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2001): 하층 선원을 통해 보는 자본주의 발전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집에 있던 책을 거의 다 처분했다. "거의 다"라는 건 처분 안 한 책이 있단 건데, 주로 선물받았거나 특별한 가치가 있어 아끼는 책이다. 이 책,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2001)는 후자의 경우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아끼는 책이다. 책의 존재를 절판된 뒤에 알게된 터라, 2년 동안 중고책방을 수소문해 겨우 상태 좋은 단행본을 구할 수 있었던 탓도 있다. 하층 선원과 자본주의 발전 이 책은 대항해시대가 저물고 유럽이 제국주의로 접어들던 18세기 무렵 하층 선원들의 모습을 여러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그중 핵심은 세계 노동자로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맹아로서 모습이다. 이러한 접근은 선원과 바다를 그린 여타 콘텐츠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내용이라 그 자체로도 무척 흥미롭지만, 무.. 2024. 2. 18.
[혁명의 러시아사] 조국전쟁과 데카브리스트의 난 II. 러시아 제국의 굴절 조국전쟁과 데카브리스트의 난 크림 전쟁의 패배 대개혁과 농노 해방 러시아에서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 전체 목차 및 참고문헌 보기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1825년) 재임 시기 유럽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패퇴한 것이다. 훗날 러시아가 특별히 '조국전쟁(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으로 칭하게 된 이 승전으로 나폴레옹은 몰락하고, 러시아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강국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알렉산드르 1세는 유럽 신성 동맹의 맹주로 추대되었으며, 이후 러시아는 수십 년간 ‘프랑스의 전염병’을 퍼뜨리는 혁명 분자들을 진압하는 ‘유럽의 헌병’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비록 유럽 최고의 군사 강국으로 떠올랐지만, 전쟁을 거치며 러시아.. 2023. 8. 15.
[혁명의 러시아사] 예카테리나 여제의 개혁 정치 I. 근대 러시아의 탄생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유럽화 정책 예카테리나 여제의 개혁 정치 ※ 전체 목차 및 참고문헌 보기 여러 의미에서 급진적이었던 표트르 대제의 전제 정치가 끝나고, 러시아는 한동안 혼란에 휩싸인다. 이 혼란은 표트르 대제 사후 40여 년 만에 나타난 예카테리나 2세(재위 1762~1796)에 의해 비로소 정리된다. 이 여황제의 재임기에는 대체적으로 표트르 대제와 유사한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래서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대제의 진정한 후계자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은 표트르 대제가 귀족들을 국가에 봉사하는 특권계층으로 사고했음에 비해, 예카테리나 2세는 순수한 특권계층으로서 귀족의 권리를 상당부분 확대하고 보장하였다는 것이다. 표트르 대제.. 2023. 7. 27.
[혁명의 러시아사] 표트르 대제의 유럽화 정책 I. 근대 러시아의 탄생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유럽화 정책 예카테리나 여제의 개혁 정치 ※ 전체 목차 및 참고문헌 보기 17세기 러시아의 대외 정책은 매우 폐쇄적이었다. 차르와 정부는 무엇보다 자국민들이 외국인과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힘썼다. 당시 러시아 대도시 근처에는 외국인 마을이 세워지곤 했는데, 이는 자국민들이 외국인과 직접 만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정책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는지 당대 러시아 국민들은 외국인을 매우 두려워하고 배척했는데, 외국인이 방문한 마을에선 집안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한 다음 신부에게 다시 세례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위에 오른 표트르는 당시 국민들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행동을 감행하는데, 바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것.. 2023. 7. 19.
[혁명의 러시아사]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 I. 근대 러시아의 탄생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유럽화 정책 예카테리나 여제의 개혁 정치 ※ 전체 목차 및 참고문헌 보기 세계사에서 러시아가 가지는 의미는 게르만 왕국에 미치지 못한다. ─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17세기 초의 러시아는 이미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국가였지만, 하나의 폐쇄된 국가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내륙 국가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북극해와 태평양은 혹한 때문에 항해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발트 해로 향하는 길목에는 스웨덴이, 흑해로 향하는 길목에는 투르크가 버티고 있었다. 러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길을 직접적으로 차단해버린 이 두 나라는 걸핏하면 러시아를 침략해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았다. 당시 유럽에서 러시아에 대.. 2023.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