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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역사

[서평]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2001): 하층 선원을 통해 보는 자본주의 발전

by 김고기 님 2024. 2. 18.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집에 있던 책을 거의 다 처분했다. "거의 다"라는 건 처분 안 한 책이 있단 건데, 주로 선물받았거나 특별한 가치가 있어 아끼는 책이다. 이 책,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2001)는 후자의 경우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아끼는 책이다. 책의 존재를 절판된 뒤에 알게된 터라, 2년 동안 중고책방을 수소문해 겨우 상태 좋은 단행본을 구할 수 있었던 탓도 있다.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
<그림 1> 마카스 레디커, 2001,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 박연 옮김, 까치.

 

하층 선원과 자본주의 발전

 

이 책은 대항해시대가 저물고 유럽이 제국주의로 접어들던 18세기 무렵 하층 선원들의 모습을 여러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그중 핵심은 세계 노동자로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맹아로서 모습이다. 이러한 접근은 선원과 바다를 그린 여타 콘텐츠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내용이라 그 자체로도 무척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시초축적 단계에 지상에서 밀려난, "땅 위에서 밥벌이를 할 수 없는 자들"이 결과적으로는 해외무역에 종사함으로써 세계자본주의의 팽창을 이뤄냈다는 역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 세대라면 KOEI의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한 번쯤은 즐겨봤을 테다. 나 역시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통해 세계지리와 세계경제를 배웠고, 낭만화된 모험과 해전의 인상을 깊이 가지고 있다. 이후로도 틈틈이 관련 서적을 찾아 보며 해양사를 공부했었다. 동시에 학교에서는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체제에 대해 배웠는데, 해양사와 자본주의 발전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인상은 있었지만 이 둘을 하나로 엮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며 일반론을 만드는 경험을 처음으로 해볼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 4 with 파워업키트 HD Version
<그림 2> 2021년에 발매된 <대항해시대 4 with 파워업키트 HD Version>의 커버 이미지. 다만 대항해시대의 배경과 이 책이 다루는 시기 사이엔 100년 정도 간격이 있다.

 

다른 세계로서 배와 해적

 

제목 '악마'와 '검푸른 바다'는 당시 하층 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두 대상을 의미한다. '검푸른 바다'는 말 그대로 시시각각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자연환경인 바다다. 그리고 '악마'는 선장이었다.

 

배라는 공간은 몹시 특별하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지만, 그 자체로는 폐쇄되어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여기서 세계란 별도의 문화와 체계, 조직, 규범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당시 상선 선장들은 채찍과 수장이라는 공포를 통해 선원을 통제했다. 범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떠다니는 장원이었다. (여담이지만 SF의 단절된 공간으로서 우주선의 이미지는 대양항해 중인 범선과도 꼭 들어맞는다. 아마 우리가 지금 우주여행을 보며 느끼는 코스믹 호러는 당시 선원들에게는 아주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공포였을 테다.)

 

17세기 영국 상선의 구조
<그림 3> 17세기 영국 상선의 구조. 한 번 출항하면 최소 수십 일은 외부와 단절된 채 자급자족해야 했다. (출처: Musphot, Wikimedia Commons)

 

18세기 해적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만 그 전모를 볼 수 있다. 소설과 영화, 게임이 그리는 해적은 낭만과 모험을 찾아 떠나거나,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잔인하고 강력한 악당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해적의 전성기라고 불릴 시기 실제 해적의 대다수는 상선과 군함에서 채찍질당하던 하층 선원들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배는 하나의 세계이기에 그 문화를 하나로 규정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해적 사회에 빈번히 나타나는 중요한 제도는 선장을 다수결로 뽑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획물을 (역할에 따라) 평등하게 나누었고, 심지어 작업 중 부상당해 더 이상 일(해적질)을 할 수 없는 선원을 위해 일정 분량을 떼어 놓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상 사회보장제도의 원형인 셈이다.

 

어쨌든 그들은 기회가 된다면 악마(상선과 군함의 선장들)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당한 만큼의 복수였다. 하지만 동시에 훌륭한 선장들은 우대했다. 배의 하층 선원들이 선장을 비호하는 경우(물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해적들이 상선을 호위해주거나, 혹은 자신들의 노획물 판매를 의뢰하거나, 심지어 자금을 투자하는 경우도 있었다. 선장에게 대항할 때만큼은 바다 위 선원들은 하나였다.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더 이야기해 보자.

  • 당시 개별 함선은 자영업자 개념이었기에 전쟁 때 징발되어 적과 교전을 벌인 함선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바로 자국 상선을 털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 사략선 선원은 배를 나포할 경우 화물에 대한 일정 지분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많았다. 개중엔 소작농 200년치 월급을 한 번에 배당받은 선원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선원은 죽는다.
  • 영국 해군은 18세기에도 월급 올려달라고 파업했다. 파업만 하면 다행이고, 선장들을 많이 죽였다.


18세기 하반기로 접어들며 해적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전체 해적 세력은 여전히 크고 강대했지만, 그들은 프랑스 6월 항쟁기 분할지 소농민이 그랬듯, 오늘날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이 그런 것처럼, 연대하여 그들의 적과 대적하기에는 너무도 분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국의 해적이여, 단결하라?"

 

영화 &quot;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quot; 중에서
<그림 4>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중에서. 해적 영주들이 단결(?)하여 해군에 맞서는 장면은 실제 역사 속에서도 그들의 생존을 위한 적절한 진단이었던 셈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당대의 미시적인 일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 제도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그 이후에 체제와 체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애초에 선원과 해적이라는 것 자체가 각종 콘텐츠를 통해 이미지화 된 탓에 반드시 필요했던 작업이기도 하겠지만, 오늘날까지도 어떤 대상에 대한 담론이 막연한 이미지, 그러니까 청년·대학생·노동자·20대·환자 등의 전형에 머문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적절하고도 치명적인 접근이었다. 사회과학은 이처럼 보고 싶은 걸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걸 봐야 한다.

 

한편의 의의는 다른 세계의 존재다. 인간은 너무도 쉽게 자기를 둘러싼 문화와 환경이 보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 와서는 더더욱 그렇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름의 세계를 구성하고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구축했던 선원들의 일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세계에 해당한다. 이미 존재했던 다른 세계의 존재는 앞으로 만들어 갈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사회학적 상상력! 최근 사회변혁에 대한 담론들이 다른 세계가 아닌 있는 세계의 보완에 몰두하는 만큼, 이런 시각과 담론이 더욱 소중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물론 그런 '보완'이 현실에서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당장의 실질적인 도움을 빠르게 주기 위한 방법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그쪽을 지지하고.)

 

 

※ 이 글은 2022년 1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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