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I. 러시아 제국의 굴절
- 조국전쟁과 데카브리스트의 난
- 크림 전쟁의 패배
- 대개혁과 농노 해방
- 러시아에서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흑해 진출을 위해 투르크와 전쟁을 준비하던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년)는 이내 유럽의 반발을 마주하게 된다. 곡물 수출을 위한 흑해 창구를 확보하려던 러시아에 대해 투르크와 영국, 프랑스 등이 동맹을 맺고 전쟁을 감행한 것이다. 이 전쟁이 바로 나이팅게일과 톨스토이를 통해 잘 알려진 ‘크림 전쟁’이다.
자신만만하던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한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전염병을 구제"한다던 유럽의 헌병은 어느새 종이 병정이 되어 있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패배의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시기 러시아와 서구 유럽은 생산력 차원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800년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철 생산은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1850년이 되었을 때 영국은 러시아의 10배에 달하는 철을 생산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사용되는 기계의 대부분이 서구에서 수입되는 것이었고, 그 양은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여 18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1820년대에 비해 약 72배에 달하는 금액이 기계류 수입에 지불된다. 농산품을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던 러시아는 사실상 서유럽의 원료 공급지로 전락하고 있었다.
러시아 | 프랑스 | 독일 | 영국 | |
철도의 길이 | 1,000km | 5,000km | 6,000km | 15,000km |
<표 1> 1852년 기준, 유럽 각국의 철도 길이(자료: 『대국굴기 강대국의 조건: 러시아』에서 재구성)
엥겔스는 이 전쟁에 대해 “그것은 원시적인 생산 방식의 민족과 현대적인 기술을 가진 민족 간에 벌어진 절망적인 전투였다.”라고 평했다. 이 전쟁은 사실상 자본제 대한 농노제의 패배였다. 유럽에서의 패권을 단숨에 잃어버린 이 뼈아픈 패배로 인해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현대화의 길을 구상하게 된다. 그 핵심에는 농노제 폐지가 있었다. 예카테리나 2세 이후로 점증하는 농노 폭동은 러시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었다[5].
[5] 1826년부터 1854년에까지 30여 년 동안 712회의 봉기가 발생하였는데, 1855년에서 1861년까지 6년 동안의 봉기는 474회에 이르렀다.
니콜라이 1세는 농노 해방에 대한 계획을 세웠으나, 끝내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 이 글은 2022년 4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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