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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의 반대자들] 1. 플라톤: 민주주의는 나쁜 정부를 산출하게 된다

by 김고기 님 2023. 6. 3.

<목차>


  1. 플라톤: 민주주의는 나쁜 정부를 산출하게 된다
  2. 엘리트주의자: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환상이다
  3. 고전적 자유주의자: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적이다
  4. 가세트·탈몬: 대중정치는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5.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6. 나오며: 그들은 왜 민주주의를 비판했나?

 

들어가며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다. 어찌나 당연하게 여겨지는지,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수많은 제도와 권력마저도 스스로 민주주의의 실천자임을 천명하고 다닌다.

 

이러한 언어적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민주주의 이념 그 자체에 대해 지난 수 세기 동안 격렬한 논쟁이 있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시리즈, "민주주의의 반대자들"에서는 이처럼 민주주의의 이념을 비판적·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의견을 통해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한편, 앞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플라톤의 민주주의론

 

플라톤의 민주주의론은 인간의 자연적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모든 인간이 이성적인 건 아니며, 따라서 동등한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금, 은, 동의 서로 다른 소질과 특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진리를 볼 수 있는 금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철인 왕으로서 수호자 계급[1]이 되어 대중을 통치할 때 가장 바람직한 통치가 이루어 진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시민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정은 서로 다른 인간의 본성이 무시된 채,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폭압으로 이해된다. 또한 전문성과 공공성이 결여된 시민까지 참여하게 됨으로써 최종적으로 참주정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2].

[1] 플라톤이 제시한 세 계급은 용어와 번역에 대해 많은 혼동이 있다. 여러 문헌과 자료에서는 세 계급을 통치자(ruler, 또는 철학자), 수호자(guardian, 또는 군인), 생산자(producer, 또는 장인)로 쓰는데, 이는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한 표현일 뿐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정확한 표현은 수호자(guardian, 또는 통치자), 보조자(auxiliaries), 장인(craftman)이다. 플라톤은 앞의 두 계급을 통틀어 수호자 계급(guardian class)이라 칭했고, 본문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보조자 계급은 국방과 군무뿐 아니라 행정도 맡게 된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정과 귀족정을 가장 이상적인 지배 형태이나, 실현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차선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정체를 주장했다. 그는 참주정을 최악의 지배 형태로 평가했는데, 이는 참주정이 시민을 노예로 만들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체제는 스승 플라톤을 계승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체제 분류
<그림 1>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체제 분류.

 

여기까지만 본다면 플라톤의 사상은 계급주의를 옹호하는 반동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일견 (현대적 의미의) 귀족정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의 국가론은 지금의 관점에서는 비판받을 여지가 많은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국가와 수호자 계급에는 현재의 상식과는 다른 몇 가지 전제가 존재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림 2>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혐오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기인한 바가 크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플라톤의 수호자 계급

 

첫 번째는 수호자 계급이라고 해서 오늘날과 같이 막대한 부를 누릴 수 없다는 데 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따르면 모든 시민은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공유하게 된다[3]. (더 정확하게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해체된다.) 개인의 물질적 욕망이 정치를 타락시킨다고 본 플라톤은 재산과 가족을 공유함으로써 욕망의 절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근대 자유민주주의자들의 과제였던 "어떻게 권력을 견제할 것인가?", 즉 법치주의를 해답으로 내 놓았던 바로 그 질문의 또 다른 해답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3]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플라톤을 '최초의 공산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공산주의자들은 플라톤의 국가론이 노예제 유지와 귀족의 계급적 지배를 위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며 비판해 마지않는다.

 

두 번째는 시민의 계급을 결정할 교육에 있다. 모든 시민은 스파르타식 교육 기관에서 강력한 억압과 제제가 따르는 교육을 받는다. 10대에 시작해 길게는 50세까지 계속되는 이 교육에서 각각의 시민은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부여받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개인의 소질과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모든 시민은 완전히 평등한 출발을 이룬다. 현대 사회처럼 교육 과정에서 부모의 영향이나 사교육, 지역, 학군 등의 요소가 끼어들 여지도, 또 필요도 없는 셈이다. 재산의 유무에 따라 받는 교육의 질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쉽사리 신분제 사회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혈통에 의한 세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수호자 계급은 오직 이러한 혹독한 교육을 통과함으로써 완성된다[4]. 물론 누구나 수호자 계급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플라톤의 수호자 계급은 다른 계급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뿐, 세습되지도 않으며 엄격한 금욕과 청렴이 요구된다. 애당초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즉, 금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수호자 계급이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부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수호자 계급이 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천명하는 현대 사회와 비교해 본다면 참 역설적이다.

[4] 모든 시민은 공교육을 통해 수호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20대에 이르러 수호자로서 소질이 발견되지 않은 시민은 장인이 된다. 소질이 발견된 시민들은 수호자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그중 가장 훌륭한 시민이 수호자가 된다. 그리고 남은 교육생들은 보조자로서 역할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보조자'라는 개념은 이와 같은 교육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마지막으로 직업 선택으로서의 자유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 생각했을 때, 현대 사회에서 정치가, 기업가, 국회의원 등 수호자 계급이 되는 것 역시 단순히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지언정, 자유민주주의가 플라톤의 국가를 비판할 근거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플라톤이 구상한 "완전히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하는 평등한 교육"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계속)

 

스파르타의 교육
<그림 3> 루이지 무시니, <스파르타의 교육>(1889). 스파르타 소년이 과음이 초래한 결과를 관찰하고 있다. 플라톤이 경애해 마지않던 스파르타는 사라지고 없지만, 아테네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참고문헌>


앤드루 헤이우드, 2007, 『현대 정치이론』, 이종은·조현수 옮김, 까치글방.
양재인, 1990, 『한국정치엘리트론』, 대왕사.
얼빙 짜이틀린, 2006, 『서회학 이론의 발달사』, 이경용·김동노 옮김, 한울아카데미.
윌리엄 사하키안, 2003, 『서양철학사』, 권순홍 옮김, 문예출판사.

 

 

※ 이 글은 2010년 8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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