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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 3. 자유민주주의와 그 비판

by 김고기 님 2023. 5. 24.

<목차>


  1. 민주주의의 고전적 개념
  2.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3. 자유민주주의와 그 비판
    1. 자유민주주의
    2.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3. 나오며: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

 

(1)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단어 자체에 내포된 의미로 인해 '본질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보편적으로 승인된 민주주의 모델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수많은 경쟁 모델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민주주의 모델, 혹은 형태를 유일하게 실천 가능하거나 의미 있는 민주주의로 취급하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란 단어의 의미는 전체 민주주의의 일부분일 뿐인 이 특정한 형태의 민주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다[1].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1] 이런 현상은 전쟁과 오랜 이념 갈등을 겪은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게 발견된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대립한다거나,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자체와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헌법'은 이례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그 어떤 민주주의 국가도 민주주의의 제한적인 형태일 뿐인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적 가치로 내세우진 않는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되, 그 방법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적합하다는 합의가 도출되어 그것을 추구할 뿐이다.

한국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1972년 '유신헌법'에 평화통일 조항과 함께 처음 등장했는데, 반공주의를 기치로 하던 박정희 정권이 당시 냉전이 완화되던 세계 정세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자유민주주의를 헌법화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당시 헌법 개정에 참가했던 헌법학자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것'과 '자유민주적인 것'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앞서 '민주주의 의미의 역사적 변화'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적 요소는 민주주의적 요소가 정착되기 전부터 자리를 잡아 왔다. 예컨대 입헌정부가 발전하고 있던 19세기에도 선거권은 재산을 가진 남성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그림 6>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고자 국왕 접견을 요청하다 체포되는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의 모습. 여성의 참정권은 유럽에서도 20세기에 접어들어서야 인정되기 시작했다. (출처: Getty Images)

 

자유주의 국가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개개인의 시민은 국가로부터 일정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② 견제받지 않는 정부권력은 개인을 억압하게 된다.
③ 그러므로 정부는 필요악이다.
④ 따라서 헌법, 권리장전, 권력분립 등을 통해 정부권력을 제한한다.

⑤ 시민사회는 자유로운 시민과 그들의 재산권으로 이루어지며, 정부는 그것을 존중한다.
⑥ 그러므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공존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은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주의에도 계승되었다. 문제는, 이 특성들이 자유민주주의, 나아가 민주주의의 특성 그 자체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적 요소는 그 제도에 대해 광범위한 대중의 동의가 있었다는 데 기반할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는 일종의 필요악으로 인식되고, 그것에 대해 대다수 인민들이 동의함으로써 민주적인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성립된다. 따라서 정부는 그 자체로 불필요한 것이라는 급진적 무정부주의자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국가사회주의자, 야경국가를 주창하던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이 민주적으로 수용된다면, 자유민주주의 정부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매력은 엘리트들의 지배와 대중 참여를 조화시키는 능력에 있다. 정치 엘리트는 통치를 수행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가진 통치 권력이 대중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고, 나중에는 해고당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대중의 압력에 반응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엘리트 통치의 장점과 공적 책임을 위한 필요성이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 권력이 궁극적으로 선거일의 투표자에 의해서 행사된다는 점을 함축한다. 경제적 시장에서 소비자처럼, 정치적 시장에서 권력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자유민주주의는 그 시행과 작동 원리에서 상당 부분 시장경제와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많다.

 

현실 사회에서는 유권자 개개인의 의사가 권력의 행사로 이행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운동 집단, 이익단체 등 시민단체의 결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권력은 이렇듯 시민사회에도 분산되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다원주의 민주주의로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현대사회 민주주의 원리가 '다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소수들에 의한 지배'로 표현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2)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개괄적으로 엘리트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급진적 민주주의자의 비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엘리트 이론가[2]인 라이트 밀스는 산업화된 사회(특히 미국)에서 실질적인 통치 행위는 '권력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2] 현대의 엘리트주의는 그 전의 엘리트주의와 본질적으로 개념을 달리한다. 근대 이전의 엘리트주의자들이 권력의 집중을 필연적이고, 때로는 바람직한 경우라고 본 반면, 현대의 엘리트주의자들은 경험적 분석을 통해 엘리트의 존재를 연구한다. 많은 경우 그들은 엘리트로의 권력 집중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를 비판했다. "권력은 항상 엘리트에 의해 실행되지만, 엘리트 사이의 경쟁을 통해 대중의 목소리에 반응해야 한다"는 슘페터의 '민주적 엘리트주의 모델'은 이러한 현대 엘리트주의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또한 현대 엘리트 이론가들의 상당수가 급진적 민주주의 사상을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밀스가 제시한 권력 엘리트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① 사회의 주요한 위계질서와 조직들에 명령권을 가진다.
② 규모가 크지 않으며, 조직 내에 응집력이 있다.
③ 활동과 조직이 제도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즉, 그는 군부, 기술관료, 사법부, 경찰 등과 같은 비선출 집단에 주요한 통치 권력이 부여되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밀스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치 평등과 선거 경쟁이 이러한 권력의 집중을 가리는 위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라이트 밀즈와 로버트 달
<그림 7>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1916~1962)와 정치학자 로버트 달(1915~2014)의 모습. 다원주의자인 달의 학문적 기반은 밀스의 권력 엘리트 이론을 비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출처: Yaroslava Mills, Partito Democratico Bientina)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자유민주주의자들의 대립은 사실상 민주주의에 대한 전제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자유주의자와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있어, 재산을 소유할 권리는 거의 민주주의적 지배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개인의 자유란 재산권에 의해서 보장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그들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지라도)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천명하는 정치적 평등과 자본주의 경제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사회적 불평등 사이에 내재된 긴장의 존재를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혹은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일 뿐이고, 이는 견고하게 확립된 사적 소유의 힘에 의해서 조작되고 통제된다(이른바 부르주아 독재).

 

급진적 민주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이념을 겉치레로 장식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고전적 민주주의의 개념에 기반한 대중 자치이며, 대중의 정치 참여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중의 참여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갖지 않게 만드는) 자유민주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스스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바쁜 엘리트 정치 집단을 선택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정부는 인민으로부터 유리되어 정치에의 무력증과 무관심을 재생산할 뿐이며, 이는 또다시 엘리트 정치 집단을 생산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3) 나오며: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의 벤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
<그림 8>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를 나타낸 벤 다이어그램.

 

이번 시리즈에서는 민주주의가 가질 수 있는 여러 형태에 대해 알아보았다. 민주주의는 그 내재적 특성으로 인해 하나의 특정한 형태를 가질 수 없으며, 또 가져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광범위하게 민주주의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퇴색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끝)

 

 

<참고문헌>


엔드루 헤이우드, 2007, "민주주의, 대의제, 그리고 공적 이해관계", 『현대 정치이론』, 이종은·조현수 옮김, 까치글방.

 

 

※ 이 글은 2010년 6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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