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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의 반대자들] 2. 엘리트주의자: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환상이다

by 김고기 님 2023. 6. 5.

<목차>


  1. 플라톤: 민주주의는 나쁜 정부를 산출하게 된다
  2. 엘리트주의자: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환상이다
  3. 고전적 자유주의자: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적이다
  4. 가세트·탈몬: 대중정치는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5.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6. 나오며: 그들은 왜 민주주의를 비판했나?

 

모스카: 정치적 불평등은 언제나 필연적이다

 

근대 엘리트주의자들은 권력이 본질적으로 소수 엘리트에 의해서만 행사된다는 점에 집중했다. 마키아벨리를 계승한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가에타노 모스카는 『지배계급』(1896)에서 모든 사회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누어진다고 보았다. 소수인 지배계급은 지배를 위해 필요한 권력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며, 조직된 지배계급은 조직되지 않은 피지배계급을 조작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모스카는 이를 시공간을 초월한 사회 구조의 특성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 사회 역시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사회가 아닌 것으로 상정했다. 경제적 불평등과는 별개로,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정치적 불평등은 언제나 필연적이란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 역시 지배계급의 교체를 가져올 뿐,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가에타노 모스카
<그림 4> 가에타노 모스카(1858~1941)의 초상. 그의 사상은 20세기 엘리트주의 이론을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출처: New World Encyclopdia)

 

이에 대해 당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엘리트 이론이 변증법과 유물론의 역사법칙을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지배계급(여기서는 부르주아)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특히 지배계급의 항상성에 대한 엘리트주의자들의 주장을 상속과 교육 등으로 이루어지는 세습을 은폐하기 위한 논리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후기 혁명 사회에서도 사회를 관리하기 위한 관리 계층의 등장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인정했는데, 그 관리 계층의 성격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파레토·미헬스: 혁명은 엘리트의 교체일 뿐이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 역시 모스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엘리트의 특성을 대중의 동의를 조작해 내는 '여우형'과 강제력과 폭력에 의존하는 '사자형'으로 나눠진다고 보았다. 나아가 엘리트를 단일한 집단으로 보지 않고, 엘리트 안에서도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통치 엘리트와 그렇지 않은 비통치 엘리트가 나누어지며, 그들에게 맞서 새로운 권력 구조를 형성하려는 '대항 엘리트' 개념을 통해 혁명은 지배계급의 교체일 뿐이란 모스카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당나귀와 여우와 사자
<그림 5> "이솝 우화" 중 '당나귀와 여우와 사자'를 나타낸 그림. '당나귀와 여우와 사자' 이야기는 권력의 속성을 나타낼 때 빠지지 않고 인용된다. (그림: R Solow)

 

이처럼 근대 엘리트 이론가들에게 엘리트의 존재는 과거 왕정 시대처럼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엘리트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보았던 엘리트주의자들은 사회의 변화를 엘리트의 교체와 순환으로 설명한다. 그들은 이러한 과정, 즉 엘리트와 대항 엘리트 간의 투쟁과 공방을 역사의 본질로 보았다. "역사란 귀족의 무덤이다"라는 파레토의 말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얼핏 보기와는 달리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던 셈이다.

 

빌프레도 파레토
<그림 6>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의 초상. 파레토는 한때 이탈리아 파시즘의 선구자로 여겨졌으나, 근래엔 그런 오해가 상당히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에 들어선 사회학자보다는 경제학자로서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 역시 이를 받아들여 모든 사회 집단에서 '과두제의 철칙'이 발견된다고 보았다. 그는 권위주의와 계급 구조의 타파를 외치는 사회주의 정당 안에서조차 과두제 구조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직이 커질수록 효율적 관리를 위해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은 불가피해지며, 사회주의 정당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정보의 독점화가 벌어지며, 이는 다시 과두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5].

[5] 이러한 미헬스의 주장은 독일 사민당의 사례를 일반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 역시 엘리트 간의 경쟁에 따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했다며 미헬스를 비판했다.

 

로베르트 미헬스
<그림 7> 로베르트 미헬스(1876~1936)의 초상. 독일 태생인 그는 사회주의자로서 이탈리아 사회당에 속했던 적도 있었으나, 말년엔 국가 파시스트당에 입당한다. 그는 무솔리니가 이끄는 국가 파시스트당이 하층계급의 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믿었다.

 

밀스: 의사 결정은 권력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진다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는 사회가 권력 엘리트, 다원주의적 이익집단, 대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사회의 다양한 권력 엘리트들은 서로 응집하며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다. 엘리트들은 권력과 부를 기반으로 대중과는 다른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 결과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과거 봉건사회와 맞먹을 정도로 폐쇄적인 계급구조를 띄게 되었으며, 엘리트들은 자신의 제도적 지위를 이용해 부와 권력을 더욱 확충한다. 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은 전적으로 그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익집단들은 다원주의적인 의사결정을 이루는 것처럼 보여지게 함으로써 권력이 권력 엘리트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밀스가 특히 주목한 것은 군부 엘리트였다. 그는 군부 장성과 대기업(특히 군수업체) 간부들이 (미국) 권력구조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군부의 영향력이 정치를 넘어 경제와 외교 분야에까지 침투했다고 주장했다.

 

라이트 밀스가 파악한 미국 사회의 구조
<그림 8> 라이트 밀스가 파악한 미국 사회의 구조. 그는 권력 엘리트가 사회 상층부에서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한다고 보았으며, 다원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이 오히려 이러한 권력의 독점을 은폐하고 있다 주장했다. (출처: Intro to Sociology)

 

엘리트주의자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들이 엘리트 사회를 추구한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대 엘리트주의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6]. 현대 엘리트주의자들은 사회가 계급화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원인에 주목한다. 이는 계급의 존재 자체를 숨기고 싶은 기득권에게나, 계급의 궁극적인 타파를 외치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운동가들 모두에게 비판받고 있다. (계속)

[6] 모스카와 파레토를 포함한 엘리트이론가들은 계급구조의 필연성에 주목할 뿐, 그 당위성에 대해선 부정한다. 실제로 톰 보토모어나 피터 바흐라흐 등의 엘리트 이론가들은 오히려 급진적인 민주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앤드루 헤이우드, 2007, 『현대 정치이론』, 이종은·조현수 옮김, 까치글방.
양재인, 1990, 『한국정치엘리트론』, 대왕사.
얼빙 짜이틀린, 2006, 『서회학 이론의 발달사』, 이경용·김동노 옮김, 한울아카데미.
윌리엄 사하키안, 2003, 『서양철학사』, 권순홍 옮김, 문예출판사.

 

 

※ 이 글은 2010년 8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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