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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 2.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by 김고기 님 2023. 5. 22.

<목차>


  1. 민주주의의 고전적 개념
  2.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1. 직접민주주의
    2. 간접민주주의
  3. 자유민주주의와 그 비판

 

(1) 직접민주주의

 

19세기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여전히 고전적 개념을 중심으로 인식되었다. 그중 핵심은 아테네에서 행해진 방식으로, 모든 시민이 추첨이나 순번에 의해 공직에 선출되는 형태였다.

 

19세기 민주주의의 특성은 단순히 공직 선출의 방식이 아닌,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효과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 즉, 모든 시민이 직접적·지속적으로 국정에 참여함으로써 통치자와 피치자의 차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유주의 이전 민주주의 개념의 핵심이자, 직접민주주의의 본질에 해당한다. 이는 오늘날 현실사회에서도 타운미팅 민주주의를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구현되고 있으며, 지역적 수준이긴 하지만 미국의 여러 지역과 스위스의 지방의회에서 운영되고 있다.

 

미국 메인주의 타운미팅 교육자료
<그림 3> 미국 메인주의 타인미팅 교육자료. 학교에서 타운미팅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특정 이슈에 대해 직접 모의 타운미팅을 열기도 한다. (출처: Gulf of Maine Research Institute)

 

현대 사회에서 타운미팅 민주주의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놀랍게도 자유민주주의의 아성과도 같은 미국이다. 정도와 제도의 차이는 있지만, 코네티컷, 메인,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등에서 타운미팅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중이다. 이들의 타운미팅 민주주의는 일각에서 '진짜 민주주의'라고 불리며 최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현실적이고 대표적인 구현 형태는 플레비사이트(plebiszit)와 레퍼렌덤(referendum)이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국민투표와 국민투표제도 정도가 된다. 이들 제도는 어떤 사안에 대해 모든 유권자가 직접 의사를 개진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고전적 개념에 그 원리를 두고 있다.

 

플레비사이트와 레퍼렌덤의 차이는 시행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다. 플레비사이트는 반드시 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국민적인 동의와 명분을 확인하고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레퍼렌덤은 특정 사안에 대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투표이다. 예컨대 헌법을 개정하려면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헌법 개정 국민투표는 레퍼렌덤에 해당한다. 참고로 히틀러의 총통 취임은 플레비사이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외 영국의 유럽 연합(EU) 탈퇴 역시 플레비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1934년 독일의 총통 찬성 현수막
<그림 4> 1934년, 독일에서 총통제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독일 전역에 붙은 '총통 찬성' 현수막의 모습. 히틀러의 총통 취임은 이처럼 국민투표(플레비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플레비사이트와 레퍼렌덤이 행정권력에 대한 직접민주주의 요소라면, 국민발안(initiative)과 주민발안(proposition)은 입법권력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적 개입으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최근 지방자치를 중심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사법권은 고전적 개념의 민주주의가 가장 많이 잔존한 영역이다. 추첨이나 순번에 따라 배심원을 뽑는 배심제는 고대 아테네의 공직 선출 방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배심제는 한국에서는 아직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영미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유서 깊은 형태이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전문화되며 배심원 제도 역시 점점 축소되고 있는 추세다. 기술의 발전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답변을 내놓고 있지만, 동시에 그 불가능성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2) 간접민주주의

 

고대 아테네의 모습과, 19세기 민주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현대의 정부는 전문적인 직업 정치인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한적이고 간접적인 민주주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대중의 참여가 용이치 않고, 참여의 정도가 깊지 못하다는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한적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또 대중과 정부가 분리된다는 점에서 간접적이라고 칭할 수 있다.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라는 호칭을 달 수 있는 것은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만이 그들의 통치자에게 합법성이 부여되며, 이것이 대중 권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링컨이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역설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로서 이러한 간접민주주의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비록 '인민에 의한 정부'를 완벽하게 이루어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민주주의자로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지지자들은 이 민주주의의 한계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이것이 현실적 조건에서 실천 가능한 유일한, 또는 가장 가능성 높은 민주주의의 형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현실적 입장에서) 수천만 혹은 수억의 시민을 가진 현대 국가에서 대중자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②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일반 대중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현명하게 통치할 시간도, 지식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접근에서 본다면 (정치 형태로써) 대의제 민주주의는 단지 분업의 장점을 정치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 활동에 모든 시간과 역량을 쏟을 수 있는 전문 정치인들은 일반 대중에 비해 정치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셈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서구 산업 사회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민주주의 모델의 바람직한 형태로서 자리잡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부실패'로 표현되는 1960년대 이후 오히려 고전적 민주주의가 다시금 논의되고 있다. 관료제의 본질적 한계와 대표성을 가지지 못한 정치인들의 확산, 그리고 투표와 선거가 실질적으로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특히 (정치적 발전과는 별개로) 경제적 발전에 비례하여 낮아지는 투표 참여율은 현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패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계속)

 

조지프 슘페터
<그림 5>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모습. 그는 민주주의의 과정을 투표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정치가들 사이의 투쟁으로 묘사했다. 민주주의의 과정이 경제적 영역에서 시장과 유사하다는 그의 견해는 이후 사회과학으로서 정치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합리적 선택이론'의 등장에 이바지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참고문헌>


엔드루 헤이우드, 2007, "민주주의, 대의제, 그리고 공적 이해관계", 『현대 정치이론』, 이종은·조현수 옮김, 까치글방.

 

 

※ 이 글은 2010년 6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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