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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적 변화] 2. 프랑스 혁명과 근대 민주주의의 태동

by 김고기 님 2023. 5. 1.

<목차>


  1. 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혼란스러울까?
  2. 프랑스 혁명과 근대 민주주의의 태동
  3. 엘리트 통치로 변질되는 민주주의
  4. 현대의 민주주의 이론

 

 

로크 이후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국가를 소유권을 지닌 개인들이 직접 수립한 계약의 산물[3]로 파악했다. 이러한 전제에서 행사할 소유권이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는 정치적 제한이 가해졌으며, 자유와 평등의 실질적인 내용은 유산 계급에만 국한되었다.

[3] 사회계약론은 근대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핵심이자 자유주의 사상의 정점으로, 생명·자유·재산 등의 권리를 지배자(절대왕정)의 초월적인 권한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촉발되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제한된 자유와 평등에 대해 전면적인 문제 제기를 개시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모두 봉건제 질서와 투쟁을 통해 성립해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유주의는 자유로운 소유를 확립하고자 하는 부르주아의 투쟁으로 성립한 계급적인 이념이었고, 민주주의는 신분제 정치 질서에 대항해 참여의 권리를 확장하려는 정치적 영역에서의 투쟁으로 성립된, 보다 보편적인 이념이었다.

 

따라서 근대 초기의 민주주의는 시민사회 내부의 계급 대립과 불평등에 대한 도전으로서 성격이 강했으며, 이는 곧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분열은 근본적으로 근대 사회가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으로 나누어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주의-민주주의
<그림 5> 프랑스 혁명 시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표현한 그림.

 

초기 사회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는 곧잘 그들의 이념과 동일시되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경제적으로 평등한 주권자들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참정권의 확대를 통해 시민사회 내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4]. 또한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 불평등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유 자체가 아닌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찾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자본주의적 질서 아래에서의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희망은 끝내 현실화되지 못한다.

[4]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대중 정치의 시대가 열리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했다. 즉, 보통선거와 평등선거가 시행되면 대중들이 사회주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의 반대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자유주의자들이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근대 정치질서의 확립과 민주주의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정치적 성장은 부르주아로 하여금 자유주의적 질서 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요했다. 자유주의는 소유권을 골자로 한 정치 기제를 제도화(예컨대 재산에 따른 차등 참정권)하며 민주주의의 요구에 대응하기 시작한다. 이후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본격적인 투쟁인 차티스트 운동[5]이 전개되자 자유주의의 대응은 보다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변해간다. 19세기 무렵 자유주의 세력의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한할 것인가?'였다.

[5] 영국의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얻기 위해 1838~1848년까지 진행한 일련의 운동. 1838년 첫 운동 당시 수백만 명의 서명이 적힌 청원서가 의회에 제출되었는데, 이 청원은 거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이 모두 체포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받는다. 이후 1840년과 1848년에도 파업과 청원을 통한 단체행동이 이루어지나, 청원은 매번 무시당하고 파업은 무력으로 진압된다. 동시에 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투옥도 점점 극단화되어 결국 운동은 실패로 막을 내린다.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사회주의의 이념은 민주주의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국가나 민주주의 제도를 통한 정책 개선만으로는 사회를 변혁할 수 없으며, 불공평한 소득 분배를 낳은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유 자체를 철폐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분석은 당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나타난 민주주의의 두 가지 측면, 즉 현실의 제도로서 존재하는, 자유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와 제 정치세력이 지속해서 재편되던 당시 정치 상황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혁명관에 따라 특정한 정치적 주체(프롤레타리아)에 의해 달성된 혁명이 실제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경제적 해방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물음이 남아 있다. (계속)

 

존 로크
<그림 6>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자유주의의 시조로 여겨지는 존 로크(1632~1704)의 초상화. '사유재산권'의 보호로부터 출발하는 그의 이론은 근대 민주주의으 근간이 되었으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되기까지는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림: 고드프리 넬러, 1697, <존 로크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76×64cm, 겨울 궁전)

 

 

<참고문헌>


박주원, 1998,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현대 민주주의론 1』, 창비.

 

 

※ 이 글은 2010년 5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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