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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적 변화] 3. 엘리트 통치로 변질되는 민주주의

by 김고기 님 2023. 5. 4.

<목차>


  1. 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혼란스러울까?
  2. 프랑스 혁명과 근대 민주주의의 태동
  3. 엘리트 통치로 변질되는 민주주의
  4. 현대의 민주주의 이론

 

 

19세기 무렵 자유주의 세력은, 인민 대다수는 사회 통치에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거나 그것을 실행할 수 없는 우매한 존재라는 전제 아래 민주주의의 이념을 축소하기 시작했다[6]. 민주주의는 정치 과정에서 하나의 절차로 한정되었으며, "누가 인민인가?"라는 문제는 생략된 채 "어떻게 지배를 달성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적 문제만을 고려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6] 대표적인 자유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대중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직업과 교육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투표권을 지급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소련이라는 현실 사회주의의 등장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각 진영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기제로서 민주주의론을 동원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자유주의 진영은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동일시하고 사회주의와 대립하는 것으로 이론화하는 한편, 소련 사회를 파시즘과 동일화하고자 했다.

 

냉전 지도
<그림 7> 1959년의 냉전 지도. 미국을 위시로 한 자유주의 진영이 스스로를 '자유 진영', 상대를 '공산 진영'이라 칭하는 동안 소련 등의 사회주의 진영은 스스로를 '민주 진영', 상대를 '제국 진영'이라 일컬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현실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서의 민주주의

 

레닌은 민주주의를 계급 지배를 보장하는 국가 유형으로 파악했다. 레닌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항하여 강제력을 체계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조직체로 간주된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에서 레닌은 노동자 권력에 입각한 직접민주주의를 대안적 정치 체제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을 확립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과 내용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국가의 독재로 나타났고, 결국 현실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소비에트 권력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통치로 환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자유주의가 지배 방식만으로 민주주의를 파악하여 민주주의에 내재된 평등한 인민 지배의 이상을 배제했다면, 거꾸로 민주주의를 지배 주체만의 문제로 파악한 레닌의 견해는 당과 국가에 권력 행사가 집중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현실에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공히 엘리트 통치로 귀결되었다.

 

민주주의가 엘리트 통치로 변질되며 민주주의론의 논점은 실질적 평등의 실현을 위한 조건과 국가 중심의 집중화된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모아진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비판하며, 사회주의 혁명에 민주주의 투쟁을 결합할 것을 역설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혁명을 국가권력의 헤게모니를 시민사회 영역으로 쟁취하는 것이라 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사회 영역에서부터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시민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이야말로 사회주의 혁명의 기동전을 성취하기 위한 물질적인 기반이라는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그림 8> 로자 룩셈부르크의 초상. 룩셈부르크는 대중의 자발성을 지지했고, 레닌 등의 전위당론에 비판적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선거라는 제도에 천착하여 민주주의의 방식과 절차만을 강조하는 동안, 인민의 주권 행사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단지 어떤 지배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로 변질되었다. 정당과 대의제의 확립은 엘리트 지배 역시 공고화하고 있으며, 구성원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선거권의 평등으로 은폐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바로 이 같은 형식적 평등과 절차적 민주주의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 역시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 채 자유주의적 틀을 맴도는 데서 그치고 있다. (계속)

 

 

<참고문헌>


박주원, 1998,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현대 민주주의론 1』, 창비.
최진적, 2017, 「소비에트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진보평론』 제71호, 뉴 래디컬 리뷰.

 

 

※ 이 글은 2010년 5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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