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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치학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적 변화] 1. 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혼란스러울까?

by 김고기 님 2023. 4. 29.

<목차>


  1. 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혼란스러울까?
  2. 프랑스 혁명과 근대 민주주의의 태동
  3. 엘리트 통치로 변질되는 민주주의
  4. 현대의 민주주의 이론

 

미리 한 줄 요약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의가 혼란스러운 건 민주주의라는 개념 안에 ① 누가 인민인가, ② 어떻게 지배 엘리트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달성해야 하는가, ③ 어떻게 민주적으로 인민을 지배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정작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하나에는 인류가 그간 누적해온 수많은 이념과 사상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민'이고, 어떤 게 '주'인가에 대한 논쟁은 2,5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공인된 선'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물론 심지어 전체주의자들까지 스스로 민주주의의 실천자임을 자부한다. 그렇기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엄밀하게 짚어보는 것은 공동의 가치를 선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번 시리즈,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적 변화"에서는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이어져 온 여러 가지 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한편, 앞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민주주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아테네 학당
<그림 1> 여러 그리스 철학자들을 특징적으로 묘사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우리가 이야기하게 될 민주주의론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2,400여 년 전의 저 철학자들에게 기반하고 있다. (그림: 라파엘로 산치오, 1509~1511, <아테네 학당>, 프레스코 벽화, 500×770cm, 바티칸 사도 궁전)

 

왜 같은 단어를 쓰는데 다른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다양한 질문이 던져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이념에 내포된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비롯하는 바가 크다. 민주주의, 즉 '인민[1]의 지배'는 인민이 지배자가 되는 동시에 피지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에서 볼 때 인민에 의한 지배를 달성하고자 하는 투쟁이나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민을 지배하고 지배하려는 방식, 즉 정치체제의 문제로 나타난다.

[1] '인민'이란 국적, 민족, 성별, 연령, 신분 등과 무관하게 사회를 구성하는 피지배자 일반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국민'이라는 단어에는 국가가 전제된다. 국가가 없다면 국민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접근에선 국민에 대한 국가의 근원적 우위가 상정된다. 그렇기에 한 나라의 국경에 속박되는 것이 아닌, 전체 사회의 피지배자이자 지배자로서 인민이라는 개념을 설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첫 발자국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전쟁과 이념 갈등 탓에 '인민'이라고 하면 사회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의 피지배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이는 의미가 왜곡되어 변화한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민'이란 단어는 본래 의미로 무리 없이 사용되었으며, 이승만 대통령도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라고(『이대통령훈화록』), 제헌 국회는 "남한인민"의 선거에 따라 수립되었다(『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고 말한 바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1863)도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로 번역되는 것이 학술적으로도, 또 언어적으로도 옳다.

 

더불어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이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것도 바로 이 '평등'이 달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급적 분열이 필연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을뿐더러,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실천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성취하려는 행동은 불평등에 저항하여 평등한 지배를 구축하고자 하는 이론과 투쟁으로 나타나게 된다.

 

민주주의의 발현
<그림 2> 현실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발현되는 모습.

 

현대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가 정치사상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대립되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이유도 이처럼 서로 다른 문제 영역의 실천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때문이다. 두 영역은 하나의 개념과 목표를 지향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발현될 때에는 직접 연계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상호 충돌적이기까지 하다. 또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나는 대립은 그 사회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기술적인 측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누가 '인민'인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그들의 현실과 관계되는 존재론적인 문제가 반영된다.

 

특히 계급 간 대립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계급 대립 속에서 지속해서 변화하며 제도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 대립을 극복하는 방식에 따라 현대의 민주주의는 크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 즉 사민주의와는 다르다[2])로 나타난다.

[2]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요소를 기반으로 사회주의를 실행하는 것으로, 현실사회주의 국가(소련)에서 시행된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이다. (물론 항상 그렇듯 이론과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제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이에 비해 사민주의는 사회의 변혁을 민주주의적 방법론으로 이루어내려는 일련의 운동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식

 

민주주의론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크게 민주주의의 개념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논리적 파악 방식과, 역사적 변화에 따른 민주주의의 존재론적 변천에 주목하는 역사적 파악 방식으로 양분된다. 물론 각 방식 내에는 더 다양하고 세부적인 방식이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큰 틀에서만 접근해보자.

 

먼저 논리적 파악 방식은 주로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부형태 또는 정치 방식, 절차, 정치기제로써 접근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단지 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이념 간의 긴장 속에서 현실의 분열된 내용에 따라 역사적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 대의제, 직접선거가 이루어지는가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 변화 속에서 지배주체의 문제로, 방식의 문제로, 또 이데올로기로도 나타났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파악 방식에 한정하지 않고 역사적 변화에 따라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제임스 매디슨 초상화
<그림 3>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1751~1836)의 초상. 오늘날에야 (특히 한국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강력한 반대자 중 하나였다. (그림: 존 밴덜린, 1816, <제임스 매디슨>, 캔버스에 유채, 66×56.4cm, 백악관 블루룸)

 

물론 이러한 접근이 민주주의가 시대에 따라 다양할 수 있으며, 어느 것이나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현실에서 변화해 온 기준을 살펴보자는 것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실체를 평가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찰에서핵심이 되는 범주가 바로 국가, 시민사회, 그리고 계급이다. (계속)

 

 

<참고문헌>


박주원, 1998,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현대 민주주의론 1』, 창비.

 

 

※ 이 글은 2010년 5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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