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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strongman과 dictator

by 김고기 님 2023. 6. 11.

※ 이 글은 2012년 12월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논평으로, 당시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했던 글을 블로그를 이전하며 재게시한 것입니다.

 


 

<목차>


  1. THE STRONGMAN'S DAUGHTER
  2. 언론의 역할은 받아쓰기가 아니다

 

 

먼 옛날 나의 국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국어사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하셨다. 학생들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모른 채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에 이른 나는 그 말이 굉장히 한계적이라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국어사전 역시 단어의 의미를 굉장히 피상적이고 제한적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미묘한 함의와 어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사회과학과 철학의 개념어에서 특히 자주 나타난다.

 

TIME&#44; 2012. 12. 17.
<그림 1> TIME - Asia Edition - December 17, 2012 No. 25 Cover. (출처: time.com)

 

1. THE STRONGMAN'S DAUGHTER

 

어제(2012. 12. 7.) 박근혜 후보에 관한 외신의 보도와 관련해 재밌는 논쟁이 있었다. 미국의 시사 잡지 TIME이 아시아판 표지 모델로 박근혜 후보를 내세우며 "THE STRONGMAN'S DAUGHTER"란 문구를 사용한 것이다. 우습게도 새누리당은 이를 "강력한 지도자"로 번역했고, 몇몇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는 촌극이 벌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는 완벽히 틀린 번역이다. strong man이라고 썼으면 그럴 여지가 약간이라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영영사전의 strongman 정의
<그림 2> Dictionary.com(위)과 Longman English Dictionary Online의 strongman 정의. 네이버 영한사전은 이 내용을 한 번 더 요약해 간단하게 "1. 독재자, 2. (서커스 등의) 괴력사, 장사"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서 다룰 내용은 글 가장 앞에서 언급했던 국어사전이―여기에선 미국의 국어사전인 영영사전이― 전하지 못하는 미묘한 어감이다. strongman은 독재자다. dictator도 독재자다. 그러나 dictator가 문자 그대로의 dictate를 행하는 독재자를 의미한다면, strongman은 같은 독재자를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조롱과 비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strongman이 가진 1차적 의미, 위에서도 제시되었듯 서커스 등의 차력사인 것에서 기인한다. 즉, strongman의 '독재자'란 의미 자체가 '차력사'에서 확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비슷한 의미의 변화를 거친 표현을 꼽자면 '망나니'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이는 본래 '참수 집행인'을 뜻하는 표현에서 출발해 오늘날에는 말과 행동이 막된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strongman도 마찬가지다. 서커스나 차력 쇼에서 힘쓰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 정치 지도자를 지칭할 때도 쓰인다면, 그 표현에 내포된 미묘한 어감이 대충은 느껴지지 않는가?

 

구글 strongman 이미지 검색 결과
<그림 3> 구글에서 strongman 이미지를 검색한 결과. 이와 같은 이미지를 가진 단어가 정치 지도사를 지칭할 때 쓰일 함의에 주목하자.

 

특히 strongman은 군인 출신 독재자, 혹은 군사독재자들에게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앞에서 살펴본 '힘이나 쓰는 놈'이란 이미지와 연결된다. 개인적으로는 한겨레의 '철권통치자'란 번역이 strongman의 함의에 그나마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표현에 있어서 무게감도 dictator에 비해 부족하다. strongman이란 명사가 고정적으로 따라 붙는 인물로 '파나마의 스트롱맨 마누엘 노리에가'나, '발루치스탄의 스트롱맨 라흐무딘 칸' 정도가 있는데, 이 인물들이 와닿는 무게감이 독재자로서 strongman이란 표현이 갖는 무게감과 엇비슷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마누엘 노리에가는 6년을 독재하고 22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

 

그 외 주로 소련의 지도자들에게 strongman이란 칭호가 부여되었는데, 이는 냉전 시기 상대 지도자들을 비하하려는 선전 전략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확실한 예시로 히틀러에게는 strongman이라는 표현이 잘 쓰이지 않는다. 그는 위대한(?) dictator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TIME이 strongman이란 표현을 dictator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처음엔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라고 TIME이 조금 물러선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한 가지를 더 짚고 가보자. 역시 독재자라는 의미를 가진 autocrat와 dictator는 어떻게 다를까? 여기서 auto는 잘 알려진 '자동'이라는 의미로 연결되는 '자신'을 의미하고, 크라트는 데모크라시로 잘 알려진 cracy의 주체를 의미하는 crat가 붙은 것이다. 즉, 단일한 인물, 혹은 기구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전제군주'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dictator보다 훨씬 범위가 좁다. 사실 dictator는 이 단어가 파생되는 동사 dictate만 보더라도 그리 강한 어감을 갖는 표현이 아니다. 단순히 독단적인 사람을 일컫는 표현으로도 자주 쓰일 정도로 그 의미가 넓고 포괄적이다.

 

2. 언론의 역할은 받아쓰기가 아니다

 

굳이 외국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모국어의 어감과 함의, 혹은 그 정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공산주의와 독재가 동의어로 쓰이는가 하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면 개념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단지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내게 이 개념들을 가르쳐 준 미국인 교수도 영어를 쓴다고 해서 오토크라시와 모나키, 티라니의 차이를 아는 건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비슷하게, 한국어라고 해서 한국인들이 '전제정'과 '참주정'의 차이를 모두 알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담으로 <문명 5>에선 파시스트의 문화정책 트리를 autocracy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함의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전문과 비전문을 매개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몇몇 언론이 보여준 '받아쓰기'식 보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실 이번 사건은 '전문'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수준이다. 당장 영영사전만 찾아봐도 바로 나올 내용에 대고 "강력한 지도자"니, "실력자"니 하면서 "독재자란 '주장'도 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린다는 것 자체가 언론의 무능과 직무 유기를 명백히 보여준다.

 

<그림 4> 미국 하원에서 열린 '비미국인 활동 조사 위원회'의 모습. 매카시즘 광풍은 주장의 진위는 파악하지 않고 주장 자체만을 부각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번역이라는 게 퍼즐처럼 서로 다른 언어의 1:1 대응은 아니므로 '실력자'라는 표현을 딱 잘라서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는 말도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실력자'라는 의미로 쓰일 때도 명백히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됨에도, 단어에서 부정적인 어감 자체를 삭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한 악의적 오도나 무지의 결과다. dictator가 단순히 고집불통인 사람을 이를 수 있는 것처럼, strongman은 부정으로 낙마한 정치인이나 비리를 저지른 기업인 등을 의미할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맥락이 전해진 경우에야 strongman이 비로소 '실력자'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까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strongman은 그 자체로 '독재자'를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차력사'라는 의미를 거쳐 비유적으로 이르는 것이기에, '독재자'라는 의미를 전하는 데 있어서는 조금 완곡적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정치 지도자를 지칭한다면 그 함의에선 dictator에 비해 오히려 조롱하는 의미도 담긴다.

 

한 걸음 뒤에서,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단어에 담긴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독재자'가 나쁘다는 건 대다수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보편적인 주장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 승인에 수긍하면서 동시에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일부 사람들은 박정희가 독재자가 아니라는 인지부조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독재자는 독재자고, 이는 더 이상 논의할 여지가 없는 하나의 사실이다. 이를 부정하고 굳이 단어와 개념을 그에 맞추려 한다면 결국 이번처럼 광범위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그래. 독재자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착한 독재', '필요악', 혹은 '그 시기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 어떨까?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있는 것을 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le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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