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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후일담] "IMF는 국민 과소비 탓 교과서" 비판 글에 대한 오해와 해명

by 김고기 님 2023. 5. 7.

※ 이 글은 2010년 9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갱신된 사실을 반영하고, 후일담과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IMF의 원인이 국민 과소비 때문이라는 교과서
  2. 의혹: 왜곡된 정보이다. 해당 사진은 교사용 교과서이다.
  3. 의혹: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있다. 교과서는 국가, 기업, 국민의 책임을 모두 다루고 있다.
  4. 오도: 외환위기의 원인은 재벌의 방만한 경영, 국가의 외환관리 실패,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대출뿐이다.
  5. 오도: 해당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가 왜곡한 교과서다.
  6. 후일담: 10년이 더 지난 지금,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0. 들어가며: IMF의 원인이 국민 과소비 때문이라는 교과서

 

2010년 9월, 나는 한 소셜 미디어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었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는 IMF의 원인이 국민의 과소비 때문이라 쓰여 있습니다. 이를 재벌의 방만한 경영, 국가의 외환관리 실패,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대출로 바르게 고쳐질 수 있도록 알려 주십시오.

 

초등학교 5-2 사회지도서 108쪽
<그림 1> 7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5-2 사회지도서』, 108쪽. (출처: 신은희, 2010. 9. 7, "IMF가 국민들의 과소비때문이라고?", 《오마이뉴스》에서 재인용)

 

이 글은 하루 만에 수천 번 넘게 공유되며 큰 화제가 되었다. 주요 언론에서 지면을 할애해 다룰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동시에 엄청난 비판과 비난도 마주하게 되었는데, 반박과 해명을 반복하다 지쳐 내 입장을 정리하고자 이 글을 준비한 것이다. 동시에 해당 문제와 관련된 주요 쟁점을 갈무리한 글이기도 하다. 블로그를 이전하며 글을 그냥 없애버릴까도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을 듯해 후일담과 함께 옮기게 되었다.

 


 

윗글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파문이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고, 종종 논란이 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해당 교육과정(7차)이 시작된 지도 이미 8년이나 지났기 때문입니다. 당장 포털만 검색해 봐도 이 문제와 관련된 예전 뉴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게 된 것도 《오마이뉴스》의 기사, "IMF가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고?"를 접한 다음이었습니다. 뉴스를 살펴보던 중 우연히 이 기사를 발견했고, 해당 내용이 여전히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교육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책을 확인하고, 현직 초등학교 교사분들을 통해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서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제가 이 문제에 기여한 것은 처음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는 것 정도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해당 글이 화제가 된 데에는 소설가 이외수 님의 공유와 《헤럴드경제》의 아래 기사가 기여한 바가 크겠지요.

 

헤럴드경제 기사
<그림 2> 소설가 이외수의 반응을 다룬 《헤럴드경제》의 기사. (출처: 이혜미, 2010. 9. 16, "뿔난 이외수 "국민한테 누명 씌우나"", 《헤럴드경제》)

 

그러나 소셜 미디어 특유의 한계로 인해 의도치 않은 오도가 발생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특히 이외수 님이 공유하신 한 문장만 계속 화제가 되고 확산되면서 잘못된 정보가 재생산된 측면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러한 의혹과 오도에 대해 해명하고자 합니다.

 

1. 의혹: 왜곡된 정보이다. 해당 사진은 교사용 교과서이다.

 

교과부 5-2 교사용 사회교과서 108쪽에 있는 내용입니다. 경제위기가 과소비때문이다는 언급은 여기 말고도 사회과탐구에도 있습니다.

 

해당 글에는 위 문장이 바로 이어지지만,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신 듯합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진은 교사용 교과서가 맞습니다. 그러나 교사용 교과서에 실렸다는 것 자체가 사안에 대한 교과부의 시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왜곡되 정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교과부의 서술방향이 곧 교과서의 방향이 되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학생용 교과서에도 "IMF는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 파트에서는 "외환위기는 과소비 탓" 부분도 문제이지만 비용의 사회화를 당연한 것인 양 서술한 부분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5-2 사회과탐구 22쪽
<그림 3> 『초등학교 5-2 사회과탐구』, 22쪽. (출처: 신은희, 2010. 9. 7, "IMF가 국민들의 과소비때문이라고?", 《오마이뉴스》에서 재인용)

 

2. 의혹: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있다. 교과서는 국가, 기업, 국민의 책임을 모두 다루고 있다.

 

<IMF는 과소비 탓 교과서>에서 제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원인을 국민으로 돌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과서는 정부, 기업, 국민의 원인을 나누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과관계가 없는 과소비와 외환위기를 연결시킨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하게 오도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제가 받은 한 메시지에 따르면, 어느 언론사가 "언론사 취재에 따르면", "다른 언급은 없고 국민의 과소비만 이유로 언급돼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취재한 기자나 보도한 언론사 모두 실망스럽습니다. 교과서를 정말로 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제 글을 인용할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제 페이지를 방문해 보시는 게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벌어지는 2차 오도가 "국민, 기업, 국가의 잘못인 데 국민만 잘못인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국민의 과소비도 원인 중 하나가 맞다"가 됩니다. 이는 제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뿐더러, 저 문장 자체가 잘못된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개인의 영역인 '과소비'와 국가 경제의 영역인 '외환위기'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오류가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전제되어 있으니, 관련된 서술 또한 오류투성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초등학교 5-2 사회과탐구』 22쪽의 주부 ○○○ 씨의 서술을 보면 근검절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검절약은 개인의(미시) 미덕일지언정 더 이상 사회의(거시) 미덕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외환위기의 단기 극복 또한 소비 촉진 정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정책이 이후 어떤 해악을 가지고 왔는가는 일단 뒤로 미룹시다.)

 

3. 오도: 외환위기의 원인은 재벌의 방만한 경영, 국가의 외환관리 실패,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대출뿐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라는 점에 집중하다 보니 다소 피상적인 내용을 제시한 것인데,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수탈이나 금융자본주의의 구조적 경향을 배제한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지적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수준, 어떤 방식의 접근이 '교과서'에 적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긴 합니다.

 

4. 오도: 해당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가 왜곡한 교과서다.

 

해당 교과서는 7차 교육과정 교과서로 2002년부터 올해까지 사용되었습니다. 내년부터 교과서가 바뀌는데 오늘에서야 화재가 된 것이지요.

 

언급한 교과서가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이야기가 소셜 미디어와 여러 커뮤니티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일일이 반박 댓글을 달고 있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쉽게 진화될 것 같지 않네요. 더 자세한 설명을 달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맛에 맞는 정보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이들에게 실망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오도는 문제의 본질을 해치는 것은 물론 해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저뿐만 아니라 독자분들도 힘써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이상 네 가지가 "IMF는 국민 과소비 탓" 글과 관련하여 제가 파악한 문제들입니다. 이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다면 메시지나 댓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교과서는 2010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습니다. 왜 다 끝난 지금에 와서 문제를 제기하냐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그 이유를 아래 이미지를 통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네이버 지식iN
<그림 4> IMF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모습. (출처: 네이버 지식iN)

 

내용을 자세히 보면 질문을 제시한 학생이 틀린 이유가 "IMF는 국민의 과소비 탓"이라는 잘못된 답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두 개를 써야 하는 데 하나만 썼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이번 문제가 단지 교과서의 문제가 아닌 학생과 선생님, 학교, 나아가 교육과정 전반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국민일보 기사
<그림 5> 해당 문제에 대한 교과부 관계자의 입장. (출처: 이용상, 2010. 9. 17, "IMF 사태는 우리 국민 과소비 탓"?... 초교 교과서 진실왜곡 논란", 《국민일보》)

 

관련하여 어느 중학교 1학년 이웃분께서도 "정말로 저렇게 배웠으며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교과서는 바뀌어도, 그것을 통해 배운 지식과 세상을 보는 틀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요. 교과부의 공식 정정과 보수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이번 문제 제기를 통해 앞으로 나올 교과서의 잘못된 서술에 대해 경각심을 줄 수 있게 되었고, 특히 2011년도 교과서가 주목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제보와 메시지를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언론의 잘못된 서술을 제보해 주신 이웃님, 정말로 저렇게 배웠다고 이야기해 주신 학생분, 교과서대로 가르쳐야 하나 사실을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셨다던 초등학교 선생님, 따님이 학교에서 저 내용에 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선생님이 부정하셨다고 알려주신 학부모님, 내년부터 교과서가 개정된다고 알려주신 선생님을 포함해 메시지를 주시고 글을 공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일련의 오도와 오해를 해명하기 위해 이 글도 널리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5. 후일담: 10년이 더 지난 지금,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과거에 내가 쓴 글을 보며,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 있게 단정적으로 말한단 점에 놀라곤 한다. 이 글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나에게 외환위기의 원인을 묻는다면 아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여하튼 저 교과서는 <그림 5>의 교과부 관계자 입장에서도 나타나듯, '경제'를 잘 모르는 이들이 그저 절약이 최고라는 구시대의 도덕관에 사로잡힌 결과물이었을 테다. 이후로 교과서에선 "IMF는 국민 과소비 탓"이라는 서술이 사라졌고, 오히려 국가 경제에서 소비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정상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외환위기의 원인과 관련된 서술도 대폭 축소되었는데, 이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증명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대신 그 자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들의 노력'으로 더 채워졌는데, 결과적으로 나쁜 내용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올바른 서술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한, 절반의 해결에 그치게 된 셈이다. 그런 만큼 결국 교과서의 서술이란 게 비판적 사유를 키워주기보다는 공통의 인식을 주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le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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