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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미디어/게임

예선부터 26만 시청자, <스타크래프트> 제4의 전성기는 왔는가?

by 김고기 님 2024. 7. 26.

미리 세 줄 요약

 

① 근래 아프리카TV를 중심으로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열풍의 중심에는 스타 교육 콘텐츠인 '스타대학교'가 있는데, 이들이 만드는 대학대전은 예선에도 26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② 이 성공의 토대에는 캐릭터와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서사'가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특성, 개인방송 BJ들이 만들어 내는 캐릭터, 그 BJ들이 모여서 만드는 관계성과 콘텐츠, 그리고 팬들의 선순환이 조화를 이루며 대학대전에 남다른 서사를 부여했다.

 

③ 그 결과 대학대전은 <스타크래프트>의 새로운 전성기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참가자와 팬들의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2023년 이후 대학 열풍은 다소 꺾였지만, 잊혀져 가던 옛날 게임에 플레이어들이 직접 새로운 유입 구조를 만들어 냈다는 의의는 기억할 가치가 있다.

 

 

<목차>


  1. <스타크래프트> 영광의 시대
  2. 스타대학교란 무엇인가?
  3. 스타 교육이라는 콘텐츠
  4. 서사의 힘
  5. 스승과 제자
  6. 더 풍성해진(?) 전략과 전술
  7. 대학 간 특성과 문화 차이
  8. 모든 게 콘텐츠가 된다
  9. 스타대학교의 미래는?

 

1. <스타크래프트> 영광의 시대

 

확실히 <스타크래프트>(1998)는 한 시대를 관통한 콘텐츠였다. 2004년, 주문한 치킨이 오기도 전에 결승이 끝난 '삼연벙' 사건과 2007년 듣보 김택용이 볼드모트를 3:0으로 압도하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나는 "질풍가도"를 들으면 2009년 그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셔틀, 알못, 주작, 터렛, 버로우 등 스타판에서 만들어진 밈과 유행어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타리그, 전설의 3cm 드랍이 이루어지던 순간
<그림 1> 전설의 3cm 드랍이 이루어지던 바로 그 순간(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출처: MBC GAME)

 

2012년, 스타리그가 공식적으로 종료되면서 <스타크래프트>도 모두의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2017)의 등장은 스타리그의 명맥을 이어주었고, 이제 <스타크래프트>는 확실히 한국인의 민속놀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과거 대중문화의 언저리에서 이제 아프리카TV를 위시로 서브컬쳐가 된 스타판에 새로운 물결이 감지되고 있다. '스타대학교'라는 콘텐츠로 수많은 BJ가 <스타크래프트>로 유입되더니, 급기야 <리그 오브 레전드>(2009)와 <배틀그라운드>(2017)를 압도하는 상황까지 나타지고 있는 것이다. 2022년 5월에 진행된 '떡볶이참잘하는집 스타크래프트 멸망전 2022 대학대전 시즌1'(이하 '떡참배 대학대전')은 예선부터 20만 명이 넘는 시청자와 어마어마한 후원을 확보하며 이상할 정도의 성공을 보여주고 있다.

 

팬들뿐만 아니라 실제 프로 출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스타리그 제4의 전성기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방송이 생계인 방송인들이 방송을 쉬면서까지 합숙훈련을 자처하는가 하면, 방송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우승자 출신 전 프로는 자신의 대학이 8강에 진출했다고 눈물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과장 좀 보태 지금이 <스타크래프트> 사상 최고의 전성기다, 대학대전 자체가 아프리카 역사상 최고·최대의 대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그 열풍을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아프리카TV 스타크래프트 카테고리가 20만 시청자를 달성한 모습
<그림 2> 2022년 5월 22일(일), 우끼끼즈 대 염석대 패자전 경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기념비적인 20만 시청자를 달성한 모습. 경기 때는 당연하거니와 평시에도 스타가 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열풍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걸까? 무엇이 이러한 성공을 가능케 했을까?

 

2. 스타대학교란 무엇인가?

 

2012년 스타리그가 막을 내리고 난 뒤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인터넷 개인 방송으로 유입되었다. 주요 콘텐츠는 메인 이벤트인 ASL과 더불어 BJ 끼리의 스폰 대전(이른바 스폰빵, 시청자가 후원금을 걸고 선수들의 대결을 주선하여 승자에게 후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민속놀이답게 많은 사람들이 스타에 새로 유입되기도 했지만, "이게 프로다"라는 말처럼 <스타크래프트>에 인생을 걸고 오랜 훈련을 해온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선수들의 노화와 연습량 저하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수준이었고, 그렇게 스타판은 고인물 선수와 고인물 시청자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세태를 뒤집은 것이 바로 '스타대학교'의 등장이다. 스타대학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2018년만 하더라도 이는 실질적인 조직보다는, 프로 출신 스타 BJ들이 스타를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스타를 알려주는 콘텐츠를 의미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며 스승-제자 관계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고, 2021년 5월부터는 여러 명의 교수와 코치가 붙으며 실제 팀을 방불케 하는 조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없어지거나 곳을 포함해 총 50여 개의 대학과 동아리가 만들어졌으며, 2024년 7월 기준 16개의 대학·동아리가 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타대학교의 등장으로 스타판은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맞게 된다. 전 프로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스폰 대전은 참가자 풀의 대폭적인 증가와 함께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게 되었으며, 이들이 기존 리그에도 참여하면서 시장 자체가 확대되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스타대학교의 목록과 엠블럼
<그림 3> 2024년 7월 현재 운영 중인 스타대학교의 목록과 엠블럼. (출처: 나무위키)

 

3. 스타 교육이라는 콘텐츠

 

<배틀그라운드>나 <에이펙스 레전드>처럼 근래 성공한 게임의 중요한 특징은 '운'이 승패에 미치는 요소가 크다는 점이다. 이는 플레이어들에게 패배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동시에, 초심자에게 승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는 기본적으로 팀 게임이고,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팀의 조화나 협력도 중요한 요소다.

 

이에 비해 <스타크래프트>는 오로지 개인의 실력과 전략이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파밍을 원망할 여지도, 팀탓을 할 이유도 없다(대학대전 기본적으로 1:1 승부다). 그만큼 진입장벽은 높지만, 동시에 스포츠로서 남다른 '보는 맛'이 존재한다.

 

완전히 새롭게 스타에 입문한 BJ들의 존재는 동시에 완전히 새로이 스타에 입문하는 시청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일꾼 생산이라는, 정말 기초부터 이루어진 강의는 BJ와 시청자 모두를 스타판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고, 동시에 오랫동안 스타를 떠나 있던 시청자들을 연착륙시키는 데도 유효했다.

 

더불어 대학판이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었던 데에는 티어 제도의 역할이 컸다. 참여 BJ들을 갓티어부터 애기티어까지 총 14단계로 분류한(분류자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음) 이 시스템은 측정 기준과 공신력, 주차(고의로 낮은 티어를 유지하는 행위)와 관련해 여러 우려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경기로 묶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비슷한 티어끼리 대결하게 함으로써 밸런스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경기에 나름의 스토리와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스타CK 밸런스 티어표 중 갓티어 부분
<그림 4> '에펨코리아' 변현제 님의 스타CK 밸런스 티어표 중 갓티어 부분. 이 티어 분류는 협회나 아프리카TV가 공식적으로 제작하는 것은 아니고, 유저들이 만든 일종의 팬 콘텐츠에 해당한다. 제작자에 따라 여러 버전이 존재하며, 그에 따라 기준도 서로 다르다. 다양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런 팬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학판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 몰입을 보여준다.

 

4. 서사의 힘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대학대전, 나아가 스타판의 성공을 이끌었을까? 단 하나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서사.

 

무언가를 응원하는 데 있어서 잘 짜여진 서사는 필연적으로 과몰입을 부른다. (비록 조작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그렇게 강고한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서사의 힘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여자는 서사를 받느냐 받지 못하냐에 따라 사실상 당락이 갈린다. 아이돌에서부터 예능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모든 콘텐츠는 이 서사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이 <무한도전>의 에어로빅과 봅슬레이, 조정 도전에 열광했던 건 그들이 경기를 잘 해서나 1등을 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두면 감동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캐릭터 간의 관계성 속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난관과 역경을 해쳐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이 유입된 BJ들에게, 스타란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라는 도전의 대상은 실력과 성장이라는 요소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간 대학판과 대학대전에 대한 주된 비판은 그들의 경기력이 형편없다는 점이다. 이는 주로 오래 전부터 꾸준히 스타리그를 감상했던 기존 스타 팬층에서 나타난다. 실제로 경기를 보고 있다 보면 넥서스를 한 칸 옆에 짓는다든가, 질럿이 일꾼을 모두 다 잡을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든가, 병력이 빨려들어가는 것에 아무런 대응을 못 하는 등 심각한 요소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를 하나의 완성된 경기가 아니라 서사가 있는 쇼라는 관점에서 보면 색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만큼 성장할 여지가, 보여줄 수 있는 서사가 많다는 것이다.

 

홍진호에게 700일이라는 누적된 서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황색혁명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깊이는 다를지라도 대학판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실제로 너무 못해서, 그런데다 실력도 늘지 않아 조롱당하는 게 일상이었던 BJ가 대형 경기에서 자신보다 압도적인 티어와 전적을 가진 BJ를 상대로 공식전 첫 승리를 거두고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모든 시청자, BJ들이 "못한다, 못한다" 해도 여러분은 절 믿어주세요.
이런 대회에서 한번 이겨보는 게 소원이에요, 저.

― BJ강덕구 ―

 

1:6이라는 상대전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탓인지, 직전 경기에서 부족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50분간의 혈투 끝에 패배, 연이어 에이스 결정전(팀의 승패를 가르는 마지막 경기)까지 출전하게 되었으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전 경기의 실수를 보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역전승을 이뤄낸 BJ는 전 프로들의 극찬과 함께 팀을 탈락 위기에서 구했다. 멤버와 팬들을 눈물바다에 빠뜨렸음은 물론이다. 이런 극적인 요소는 특히 BJ와 스타대학교를 통해 새로이 스타에 유입된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소년만화 엔딩이 따로 없다. 너무나도 집중해서 경기가 끝났나 싶은 주인공과 눈물범벅이 된 동료들. 한쪽구석에서 표정 숨기는 감독. 그리고 신나서 까부는 것까지

― 유튜브 댓글(black clever) 중에서 ―

 

실패와 결핍은,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서사가 된다.

 

5. 스승과 제자

 

<스타크래프트>는 쉬운 게임이 아니다. 다양한 빌드와 전략이 존재한다. 기존 스타리그 팬들, 특히 특정 선수의 팬들은 스승의 플레이 스타일이 제자의 플레이에 묻어나는 것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BJ와 스타에 모두 정통한 팬들은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스승을 추천하는가 하면, 스승들 역시 제자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런 모습은 스타리그의 오랜 팬들에게 또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는데, 만약 프로리그가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었다면 지금 대학대전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총장과 교수들이 자신의 팀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역 시절에 못 이룬 게이머로서의 목표를 감독과 코치라는 모습으로 실현해보고 싶은 열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한 요소가 모여 그들을 과거 프로 시절에 버금갈 정도의 훈련을 자발적으로 하도록 만들고 있을 테다.

 

6. 더 풍성해진(?) 전략과 전술

 

참가자들의 전반적으로 부족한 실력은 역설적으로 <스타크래프트>의 전략·전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 무의미하거나 실현할 수 없었던 전략이 낮은 티어에서는 유의미해지는 상황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테저전에서 테란의 메카닉 빌드는 저그의 순환력을 따라가기 힘들어 매우 제한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었고, 따라서 프로급 경기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낮은 티어에서는 어차피 컨트롤은 피차 답답하고, 저그가 압도적인 기동력을 살리지도 못하며, 무엇보다 러커와 뮤탈을 상대로 바이오닉 병력을 무사히 보존하는 게 너무 힘드니 오히려 메카닉이 주류로 등장했다.

 

이에 더해 투 배럭 더블이나 BBS, 커세어 다크 같은 빌드가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심지어 저저전에서 오랜 기간 사장됐던 히드라리스크가 재발견되는 상황도 있었다. 교수·코치진 역시 저티어에서 적용할 수 있는 빌드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비록 경기 수준은 떨어질지라도) 전략의 다양성은 오히려 더 넓어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는 기존 스타 팬들에게도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캄성여대 김윤환, 김성대 총장이 학생들을 위한 교보재를 만들기 위해 저저전 히드라 전략을 실험하는 모습
<그림 5> (전)캄성여대 김윤환·김성대 총장이 학생들을 위한 교보재를 만들기 위해 저저전 히드라 전략을 실험하는 모습. (출처: 유튜브 김윤환TV [AmTUBE])

 

7. 대학 간 특성과 문화 차이

 

과거 프로리그 팀들도 나름대로의 특징과 차별성이 있었지만, 지금 스타대학교에는 그보다 훨씬 크고 명확한 차이가 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성이 서사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스승의 교육 방식 역시 스타대학교의 핵심을 구성한다. 예컨대 단일종족(저그) 대학으로, 학생들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캄성여대(총장 김윤환·김성대)는 떡참배 대학대전에서 최약체 팀으로 꼽히며 많은 이들이 탈락을 예상했지만, 혈전 끝에 파이스트(총장 박태민)를 꺾고 8강 진출에 성공한다.

 

캄성여대의 대척점으로는 철저한 성적 중심의 운영을 표방하는 염석대(총장 정윤종)가 있었다. 이들의 운영 방식은 경쟁을 심화하고 참가자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동시에 참가자들과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냄으로써 스타판의 양적 성장을 이끄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염석대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대학대전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두 대학의 성향 차이를 보여주듯 캄성여대는 모든 대학 중 가장 낮은 자퇴율을 보여주었다. (퇴학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염석대는 가장 높은 자퇴·퇴학률을 나타냈다. 그리고 두 대학이 공식적으로 맞붙은 첫 대결에서, 승자는 캄성여대였다. 이 결과가 두 대학 총장에게, 또 구성원과 팬들에게 어떤 '서사'를 불러일으켰을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지 않을까?

 

다른 대학에도 진짜 프로팀이 아니기에,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모였기에 가능한 여러 가지 신기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예컨대 큰 규모를 자랑했던 철기중대(총장 철구)는 자극적인 벌칙과 영화 <위플래시>를 떠올리게 하는 혹독한 교육 콘텐츠로 유명하다. 무친대(총장 김봉준)는 스타 경기만큼이나 외적인 콘텐츠에 힘을 쏟아 비교적 늦게 설립되었음에도 강고한 팬덤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멤버 내 친목을 지양하는 대학이 있는 반면, NSU(총장 전태규)는 구성원들의 끈끈한 친밀감이 특징적이다. 이처럼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학 간 특성과 문화 차이 역시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무친대의 MT 콘텐츠
<그림 6> 큰 인기를 모았던 무친대의 MT 콘텐츠. (출처: 유튜브 단아냥)

 

8. 모든 게 콘텐츠가 된다

 

팬덤을 확보할 때 중요한 점은 캐릭터를 구성하고, 콘텐츠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대전의 BJ들은 바로 그것이 본업인 사람들이다. 대학대전이 기존 프로리그와 구분되는 결정적인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프로리그에도 다양한 서브 콘텐츠가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핵심은 경기 그 자체에 있었다. 하지만 대학대전에서는 중계, 응원, 뒤풀이, 심지어 연습과 훈련까지 메인 콘텐츠가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생성되고 누적되는 구성원 간의 관계성(이른바 '케미')은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다. 나아가 스타와 관련 없이 대학 그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것도 나름대로의 묘미다. 스타 경기는 보지 않아도 멤버들의 대학생활(?)은 본다는 시청자도 많으며, 경기나 훈련에 참가하지 않고 오로지 콘텐츠에만 참가하는 멤버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합동방송을 하지 않거나 꺼리던 BJ들의 상당수가 이번 대학대전을 전후로 합동방송에 참가하기 시작한 경우도 많다. 이 점만 봐도 당사자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이번 대학대전이 갖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게 콘텐츠가 되니 시청자들의 몰입 지점도 다양하다. 프로리그와는 달리 감독과 코치도 이미 콘텐츠이며, 교육 콘텐츠를 보며 자신도 스타를 (다시) 배우고 있다는 시청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경향은 기존 스타 팬들을 참여 BJ에게로 유입하는 한편, BJ 팬들을 새로이 스타 팬으로 만드는 선순환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스타에 멀어져 있던 옛 팬들까지 불러모으고 있으니, 새로운 전성기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교수 평가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는 NSU
<그림 7> 교수 평가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는 NSU. (출처: 유튜브 따규햅번 오락실)

 

9. 스타대학교의 미래는?

 

이것은 서사를 가진 거대한 쇼다. 경기는 당연하거니와 무대 뒷단의 이야기와 연습, 심지어는 선수들의 일상까지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된다. 과거 프로리그가 진짜 스포츠였다면, 지금의 대학대전은 일종의 프로레슬링인 셈이다. 물론 프로레슬링과는 다르게 대학대전에는 각본이 없고, 승패는 진짜다. 그러니 이게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겠는가?

 

누구에 몰입하든, 어느 대학을 응원하든, 이 쇼는 소년만화의 법칙과 닮은 점이 참 많다. 성장, 라이벌, 위기, 동료, 역전, 그리고 탈락과 우승까지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거기에 20년간 누적된 추억까지 결합하니, 괜히 나이 40 먹고 경기 보며 울었다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게 아니다.

 

2022년, 코로나19 와중에도 오프라인 티켓을 매진시키며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었던 스타대학교 콘텐츠는 2023년을 기점으로 점차 휴지기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스타크래프트> 열풍 자체가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비록 초기부터 판을 다져온 일부 대학들이 해체되긴 했지만, 새로운 대학 또한 계속해서 설립되고 있다.

 

파생 콘텐츠의 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타대학교 학생들이 나서 '유치원'이라며 자신이 배운 내용을 새로이 <스타크래프트>를 배우는 이들에게 교육하는가 하면, 스타대학교를 통해 만들어진 인연들이 진행하는 토크쇼나 여행 방송, 먹방 등도 주목을 받았다. 대학교보다는 조금 가벼운 방식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대학교' 대신 '동아리'라는 명칭으로 임하는 팀들도 늘어나고 있다.

 

신입이 성공하기 쉽지 않은 인터넷 방송 환경에서 새로운 얼굴이 많이 발굴되고 그들 중 몇이 진짜 스타로 거듭난 것도 방송인과 시청자 모두에게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물론 2022~2023년 시즌의 광풍을 다시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 시기는 스타대학교라는 장기 콘텐츠가 시작되고 나서 맞게 된, 일종의 첫 피날레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열정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엄청났던 부분도 있다.

 

콘텐츠라는 관점에서 스타대학교가 가지는 중요한 의의는 비록 국내 한정이기는 하지만, 방송인과 플레이어, 팬들이 합심해 게임의 자생적인 재생산 구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게임이든 커뮤니티든 '뉴비'가 없다면 결국엔 소멸로 치닫게 된다. 2020년경의 <스타크래프트>는 확실히 소멸을 향해 가던 문화였다.

 

고전 게임, 아빠 게임,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 초보가 없는 게임, 늙은 팬들이 무서운 게임(?) 정도 취급을 받던 <스타크래프트>는 대학대전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다른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 이제는 <스타크래프트>보다 늦게 태어난 이들조차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고 있으니, 어쩌면 지금 우리는 <스타크래프트>가 진짜 민속놀이가 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록 스타대학교가 사라지더라도 <스타크래프트>란 콘텐츠 자체는 '먹방'처럼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리그 오브 레전드>가 활기를 잃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리그 오브 레전드>도 15년이 넘은 게임이고, 리그가 시작된 지도 10년이 지났으니, 그들이 계승했던 <스타크래프트>의 전철을 밟는 중일 테다. 물론 리그가 여전히 성황이고, 큰 사건·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특히 팀 게임이라는 특성상 <리그 오브 레전드>는 <스타크래프트>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와 팬, 방송인들이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스타대학교라는 이벤트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이다. (끝)

 

 

※ 이 글은 2022년 7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갱신된 정보를 반영하고, 새로운 내용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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