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목차>
- 북한이탈주민은 외국인인가?
- 북한이탈주민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기 위해서는 '귀순' 절차가 필요한가?
- 북한이탈주민이 외국인이라면 강제송환이 정당한가?
- 난민법상 강제송환 또는 출입국관리법상 강제퇴거가 가능한가?
- 요약 및 결론: 강제북송,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인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의 쟁점과 문제를 정리해보자. 강제북송은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일까?
(1) 행정청이 적법절차의 원리를 지키지 않았다
입법·사법·행정 등 국가의 작용은 정당한 법률을 근거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발동되어야 한다. 이는 압도적인 국가의 권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가 지난한 혁명을 거치며 수립한 근대국가의 핵심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 사례에서 강제북송이 어떤 법과 원칙에 따라 집행되었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송된 최초의 사례임에도, 통상적으로 한 달 이상이 걸리던 합심조사는 사흘 만에 끝났다. 인간의 기본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행정청은 이에 대해 엄격한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어떤 이들은 ▲헌법, ▲국적법, ▲북한이탈주민법, ▲난민법, ▲출입국관리법 등을 근거로 들지만, 지금까지 논의에서 살펴봤듯 해당 법들은 강제북송과 아예 연관이 없거나, 때로는 그러한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기까지 하다. 애초에 강제북송을 수행한 당시 외교부가 위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일부 야당 지지자들이 위 법을 통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기묘한 상황이다.
(2) 행정청의 행위는 '헌법'과 '난민법', '국제인권법'에 반한다
'남북한 특수관계론'에 따라 북한의 양가적인 성격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탈주민'은 외국인이 아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이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의사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실효 지배가 미치는 영토에 진입한 순간 그는 '헌법'과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위를 가지게 된다. 이는 해석의 여지가 없는 '헌법'과 '북한이탈주민법'의 내용 자체이다.
애초에 '북한이탈주민'이 외국인이라는 전제가 잘못되었으므로, 그 이후의 조처는 논할 가치도 없다(상위법 우선의 원칙). 정치적 현실을 고려해 탈북어민을 외국인에 준하는 사람으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난민법'은 본인의 의사에 반한 강제송환을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은 불법체류자들의 체류기간 연장용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난민의 대다수가 강제송환 시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예상되므로 법은 행정청에 엄격한 절차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 어떤 의무와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도 법률적 효력을 가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에 따르면,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모욕, 형벌이 실행되며,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정에서의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에 외국인을 송환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물론 북한이 그러한 지역인지는 별도의 논점이 될 것이다.
(3)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침해이다
사건이 다시 논란이 되고 나서, 법에 따라 정당한 조처였다고 말하던 야당 일각의 대응은 '흉악범'을 우리 사회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선 해당 북한이탈주민이 16명을 살해했다는 사실은 전제로 두자.
범죄자에게도 보장해야 할 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적법절차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근대국가의 핵심 원리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개인을 탄압하지, 죄 없는 사람을 탄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의 탈북 어민이 살인자라는 점과 강제북송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연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송은 형벌이 아니다. 북송이 '사이다'일 수는 있어도, 국가권력은 그렇게 작용해선 안 된다.
애초에 그가 법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를 외국인에 준해 취급하려면 위 (1), (2)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재판청구권은 외국인인 살인자에게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다. 이미 한국에는 같은 논리에 따라 수용된 23명의 탈북민 흉악범이 거주하고 있다.
'통치행위(국가기관이 행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수 없다)'나 '헌법' 제37조를 통해 당시 행위의 적법성을 평가하기에는 행위의 목적 자체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어떠한 근거를 가져오든 북송 행위를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송으로 인해 국가가 얻는 이익은 추상적이고 예비적이지만, 당사자의 손해는 비록 예비적이라 할지라도 생명권의 침해와 같이 매우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가장 나쁘게 보면 정권과 행정청이 알 수 없는 이유와 잘못된 절차로 우리 국민에 대한 살인을 방조한 것이고, 우호적으로 보더라도 알 수 없는 이유와 잘못된 절차로 국제인권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는 그간 인류가 수립해온 '적법절차의 원리'를 부정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남은 문제는 (중의적인 의미에서) '알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절차와 제도를 개선하는 것일 테다. (끝)
※ 이 글은 2022년 10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갱신된 정보를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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