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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2

[혁명의 러시아사] 목차와 참고문헌 ※ 이 글은 연재 시리즈, "혁명의 러시아사"의 전체 목차와 참고문헌을 편의를 위해 별도 게시물로 분리한 것입니다. 각각의 연재글은 게시 후 목차에 링크됩니다. I. 근대 러시아의 탄생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유럽화 정책 예카테리나 여제의 개혁 정치 II. 러시아 제국의 굴절 조국전쟁과 데카브리스트의 난 크림 전쟁의 패배 대개혁과 농노 해방 러시아에서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III. 혁명을 향한 여정 산업화의 물결과 이상한 자본주의 나로드니키의 사회주의 혁명 1905년의 '리허설'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형성 IV. 전제정의 최후 스톨리핀의 개혁 정책 부르주아 혁명을 일으키려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 2월 혁명 V.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4월 테제 국.. 2023. 7. 4.
전서 비둘기 이야기: 비둘기, 전쟁 훈장을 받다 들어가며 전서 비둘기와 관련된 기록 훈장 받은 비둘기 전서 비둘기를 잡아라! 나오며 1. 들어가며 사람과 친밀한 동물이라고 하면 흔히들 개와 말을 꼽는다. 하지만 수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둘기가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야 도심의 흉물 '닭둘기'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기까지 했지만, 한때 평화와 우정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이 되기 전에도 비둘기는 특유의 귀소본능과 방향감각으로 우편 배달부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융숭한 대접을 받아 왔다. 비둘기는 최고 70km을 넘나드는 시속으로 500~600km를 비행할 수 있다. 그래서 무전과 전화가 없던 시절 잘 훈련된 비둘기는 특히 전쟁에서 통신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런 비둘기들을 '전서 비둘기(전서구)'.. 2023. 6. 24.
백제와 중국의 교류 ― 백제 유물에서 발견되는 중국의 흔적들 한성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웅진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사비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백제 유물에서 찾을 수 있는 중국의 흔적들 백제 유적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무령왕릉이다. 고대 왕릉으로서는 극히 드물게 주인이 밝혀진 무령왕릉은 동시에 무덤의 양식이 중국 남조의 것을 따랐다는 점에서 중요한 내용을 시사한다. 당시 백제는 왕의 무덤조차 다른 나라의 양식을 따를 수 있을 정도로 남조의 문화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이처럼 백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 중국과 백제의 교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백제 유물에서 발견되는 중국의 흔적을 찾아볼 것이다. 1. 한성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백제와 중국 왕조의 외교는 372년 근초고왕이 중국 남조 왕조 중 하나였던 동진(.. 2023. 6. 6.
백제는 왜 하필 웅진으로 천도하였는가? 왕도로서 기반 시설이 전무한 웅진 한성 구원군과 웅진 천도 웅진 천도의 주체, 수촌리 유적 백제의 남천, 즉 고마성으로의 천도는 개로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문주왕에 의해 이루어졌다. 문주는 475년 9월, 신라의 구원군과 함께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있는 한성으로 돌아왔으나, 개로왕이 죽는 등 왕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 달인 10월, 문주는 웅진 고마성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문주왕이 왜 웅진으로 천도하였는가를 직접적으로 밝힌 사료는 없다. 그저 배경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요소는 고구려의 침략에 따른 한성의 폐허화, 그리고 여전히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보다 안전한 지역이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 웅진인.. 2023.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