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II. 혁명을 향한 여정
- 산업화의 물결과 이상한 자본주의
- 나로드니키의 사회주의 혁명
- 1905년의 '리허설'
-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형성
알렉산드르 3세(재위 1881~1894년) 시기 러시아는 유례없는 급격한 발전을 이룩한다. 석탄 생산량은 두 배가 증가했으며, 강철은 네 배 증가했다. 철도는 87%가 증설됐고, 공업 생산 성장률은 7.5%에 이르렀다. 재무장관이었던 비테를 위시로 대대적인 보호 무역 정책이 이루어졌으며, 국내 산업이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차르 정부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중공업이었다. 특히 금속 산업과 연료 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은 농민들에게 무거운 간접세를 부과하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조성되었다.
한편 농노제가 폐지된 지 반세기가 가깝도록 대다수의 해방 농노들은 여전히 고난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땅에서는 입에 풀칠할 정도의 양식을 얻었고, 농촌 공동체는 여전히 그들을 속박하고 있었으며, 산업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농촌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간히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이에 동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농업 생산량은 거주 인구를 먹여 살리기에도 빠듯한 수준이었기에 농촌의 구매력은 전무한 수준이었다. 막대한 토지 상환금을 통해 농노들은 귀족들의 봉건적 종속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새로이 정부의 경제적 종속 상태에 놓여 있었다.
도시에서 공업의 발달도 서구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러시아 국민들의 자체적인 수요는 극히 미미했고, 기업가들은 정부를 상품의 수요자로 사고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 산업의 발전은 정부의 원조를 얻을 수 있고, 정부가 구매할 수 있는 선에서만 발달하였다. 러시아에서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기업은 예외 없이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탄생했다.
산업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에 이르러서까지 상당수의 인구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전체 국민 경제 대비 공업 생산액은 41%에 지나지 않았다. 러시아는 여전히 국내의 농산물과 국외의 공산품을 맞바꾸는 농업 국가였다.
러시아의 자산 계급은 서구 부르주아지와는 달리 기업의 미래와 차르 정부의 운명을 동일시했다. 이는 1861년 불완전한 농노 해방의 결과로, 러시아 사회의 현대화와 자본주의화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소이자 러시아 사회 성격 규정의 모호성을 증대시키는 요소였다. (계속)
<참고문헌>
CCTV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제작진, 2007, 『대국굴기 강대국의 조건: 러시아』, 김인지 옮김, 안그라픽스.
John M. Tompson, 2004, 『20세기 러시아 현대사』, 김남섭 옮김, 사회평론.
Nicholas V. Riasanovsky·Mark D. Steinberg, 2011, 『러시아의 역사 하』 제8판, 조호연 옮김, 까치글방.
Victor Serge, 2011, 『러시아혁명의 진실』, 황동화 옮김,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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