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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법학

"영국에는 헌법이 없다" ― 형식적 의미의 헌법과 실질적 의미의 헌법

by 김고기 님 2023. 6. 4.
영국에는 헌법이 없다?

 

영국에는 '헌법전'이 없다. 헌법적 규범들은 주로 관습법(특히 판례)과 관습률의 지배를 받으며, 일부는 법률로써 그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에는 헌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형식적 의미의 헌법과 실질적 의미의 헌법

 

형식적 의미의 헌법이란 헌법전이라는 구체적인 형식으로 성문화된 법규범을 뜻한다. 이에 비해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성문과 불문, 법률과 조례, 관습법과 조리법 등 형식 여부를 막론하고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권력조직을 규정한 헌법규범으로서 성질을 가진 법규범들을 말한다. 실질적 의미의 헌법 개념을 인정하게 되면 헌법전이 아닌 곳에도 헌법규범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헌법의 법원(법의 원천, 혹은 존재형식)이 크게 확대되는 의의가 있다.

 

영국 대법원
<그림 1> 영국 대법원(Supreme Court) 1법정의 모습. 중세 이래 영국의 대법관은 상원의원이 겸임하는 형태였으나, 2005년 '헌법개혁법'을 통해 사법부의 독립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진: DAVID ILIFF. License: CC BY-SA 3.0)

 

그렇다면 한국은 실질적 의미의 헌법을 인정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크게 논란이 되었던 판례가 있다. 바로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결정이다(헌재 2004. 10. 21, 2004헌마554).

 

당시 헌재 결정의 취지는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 즉 실질적 헌법사항으로서 수도 이전은 곧 헌법개정을 의미하기에 법률로서 수도 이전을 규정한 것은 상위법에 위배되며, 동시에 국민이 헌법개정에 참여할 권리(국민투표권)를 침해하였으므로 위헌이란 것이었다. 이 판례는 이후 서울이 수도라는 것이 과연 헌법사항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오게 된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은 많은 경우 그 구체적 형태인 헌법전에서 실질적 의미의 헌법에 관한 내용도 규정해둠으로써 결과적으로 둘 사이가 일치되곤 한다. 그러나 헌법전에 수록되어 형식적 의미의 헌법으로서 자격을 갖췄더라도 그 내용상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과거 스위스에서는 식육동물을 마취 후 도살할 것을 헌법으로 규정했었다. 반대로 영국과 같이 형식적 의미의 헌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법률이나 관습법 등을 통한 실질적 헌법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질적 의미의 헌법과 형식적 의미의 헌법
<그림 2> 실질적 의미의 헌법과 형식적 의미의 헌법에 대한 도식.

 

 

※ 이 글은 2012년 9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갱신된 사실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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