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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법학

[법적 안정성과 정의] 1. 소급입법금지원칙의 의의와 주요 판례

by 김고기 님 2024. 3. 31.

<목차>


  1. 들어가며
  2. 소급입법금지원칙
    1. 의의
    2. 진정소급입법
    3. 부진정소급입법
    4. 시혜적 소급입법
  3. 신뢰보호원칙
  4. 나오며

 

1. 들어가며

 

법학에서 법적 안정성과 정의의 충돌은 언제나 중요한 화두다. 법의 본질적인 목표가 정의의 실현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지만,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지 않은 채 정의에 몰두하는 것은 사회의 안정과 신뢰를 해쳐 결과적으로는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법적 안정성을 위해 개별 사안에 대한 정의 실현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오늘날 사회가 다원화되고 교통과 기술의 발전으로 분쟁의 규모도 커지면서 점차 법적 안정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즉, 법적 안정성의 보장을 통해 정의로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점점 많아지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점점 더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두 가지 원칙, 소급입법금지원칙과 신뢰보호원칙에 대해 알아보고, 주요 판례를 중심으로 이들 원칙이 어떻게 정의로운 결과에 기여하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소급입법금지원칙

 

(1) 의의

 

소급이란 현재의 행위가 과거의 사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소급입법이라 함은 새로운 법을 만들며 그 효력이 과거로 거슬러 적용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헌법은 제13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형법상 소급입법금지원칙을, 제13조 2항에서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며 참정권과 재산권에 대한 소급입법금지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시점에 유효하게 성립한 행위를 사후 입법을 통해 제제할 수 있다면 법률행위에 대한 신뢰를 보장할 수 없게 되어 법적 안정성이 깨어지고 사회 안정을 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다만 이러한 원칙은 형법과 참정권·재산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원리에서 입법 일반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관점이다.

 

소급입법은 과거의 사실이나 법률관계가 완성되었는가, 혹은 현재에도 진행 중인가에 따라 ① 진정소급입법과 ② 부진정소급입법으로 구분된다. 더불어 이러한 기준과는 별개로 국민에게 유리한 시혜적 입법에 대해 ③ 시혜적 소급입법의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2) 진정소급입법

 

과거에 이미 완성된 사실이나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새로운 법적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는 진정소급입법이 된다. 진정소급입법은 법적 안정성과 사회 안정을 침해하고 개인 간 신뢰를 저해할 수 있기에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지만, 헌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다음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일반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다. 두 번째는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거나 하여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다. 세 번째는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다. 마지막으로는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다. 이러한 기준은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에 성립한 담보계약에 대해 새로운 법률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경과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 진정소급입법금지원칙의 예외에 해당하는지 등을 판시한 사례(헌재 1998. 9. 30. 97헌바38)에서 제시되었다. 당시 헌재는 “진정소급입법금지원칙에 합치되는 것으로서 정당하고, 동법 시행 전에 성립한 담보계약에 대해서까지 동법을 소급적용하여야 할 특단의 사정 있음이 인정되지도 아니한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실제 진정소급입법이 인정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책임자 처벌을 위해 1995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위헌제청’과 2008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위헌제청’이 있다. 두 사례 모두 과거에 완성된 사실에 대한 처벌 등을 목표로 하는 진정소급입법이나, 헌재는 전자에 대해서는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범한 자들을 응징하여 정의를 회복하여 왜곡된 우리 헌정사의 흐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를 인정하여 합헌으로 결정하였고(헌재 1996. 2. 16. 96헌가2), 후자에 대해서는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선언한 헌법전문 등에 비추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측으로서는 친일재산의 소급적 박탈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합헌으로 인정하였다(헌재 2011. 3. 31. 2010헌바91).

 

5&middot;18 특별법으로 법정에 선 노태우&middot;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그림 1> '5·18 특별법'으로 법정에 선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최종적으로 합헌 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헌법재판관 9인 중 5인이 위헌 의견을 제시했을 정도로 논란이 된 사안이었다. 또 소급입법 외에도 해당 법이 특정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재판부는 국민적 공감대와 공익을 들어 기각하였다.

 

(3) 부진정소급입법

 

부진정소급입법은 진정소급입법과는 달리 과거에 시작되어 현재에도 완결되지 않고 진행 중인 사실 또는 법률관계에 새로운 효과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의미한다. 부진정소급입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원칙적으로는 허용되며 예외적으로 금지된다는 것이다. 즉, 당사자의 신뢰보호보다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이 우선하므로 원칙적으로는 허용되지만(헌재 2003. 9. 25. 2001헌마194), “침해받는 이익의 보호가치, 침해의 중한 정도, 신뢰의 손상 정도, 신뢰침해의 방법과 새 입법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을 종합적으로 비교형량해서 판단”하여(헌재 2001. 4. 26. 99헌바55) 침해의 정도가 소급입법의 실현공익에 비해 과도하다면 금지된다.

 

전자의 사례는 군인연금법 제17조와 관련하여 퇴직연금 등의 급여액산정 기초를 기존 ‘퇴직 당시 보수월액’에서 ‘평균보수월액’으로 변경하는 것이 재산권 침해 또는 신뢰보호의 원칙 등에 위배하는지의 여부가 소급입법과 관련된 논점이었다. 이에 헌재는 부진정소급입법의 원칙적 허용과 “군인연금재정의 악화를 개선하여 연금제도의 유지·존속을 도모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며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합헌을 결정하였다.

 

후자의 사례는 옛 농어촌특별세법 부칙 제3조 제1항과 관련해 종전에 감면되던 양도소득세를 농어촌특별세법 신설을 통해 농어촌특별세로 부과징수하기로 바꾸며 이를 바로 적용한 규정이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박탈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주된 논점이었다. 이에 헌재는 과세요건이 완성된 양도소득세 감면분에 대해 소급하여 일부를 농어촌특별세로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동법의 시행기간 중 장차 그것이 양도되면 그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분 중 일부를 농어촌특별세로 부과”하려는 것이므로 진행과정에 있는 사실 또는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부진정소급입법이라 하여 합헌으로 결정하였다.

 

1994년 2월 25일자 KBS NEWS 중에서
<그림 2> 1994년 2월 25일자 <KBS NEWS> 중에서. 소급 입법과 관련해 가장 많은 분쟁이 발생하는 영역이 바로 '세법'이다. 법이 바뀌었다고 새롭게 안 내던 세금을 내게 되거나,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고 했을 때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4) 시혜적 소급입법

 

소급입법이 금지되는 이유는 법률행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고 법적 안정성을 증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따라서 소급입법으로 인해 불이익이 되는 경우가 없고 국민에게 유리한 입법이라면 원칙적으로 허용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입법자의 재량으로 이러한 시혜적 소급입법을 하지 않은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지 않다면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관련 판례로는 군인연금법 제16조 제6항 위헌소원이 있다(헌재 2020. 2. 28. 2000헌바69). 이 재판에서는 1982년 군인연금법 개정 전 군인으로 복무하기 전 다른 근무경력을 재직기간에 통산해 주지 않은 것이 입법재량권을 일탈한 것인지, 군인연금법을 개정하여 다른 근무경력을 재직기간에 통산할 수 있도록 하면서 1983년 이전 퇴역 군인들에게는 그 적용을 배제한 것이 위헌인지 여부가 주된 논점이었는데, 헌재는 “시혜적인 소급입법이 가능하지만, 그러한 소급입법을 할 것인가의 여부는 그 일차적인 판단이 입법기관에 맡겨져 있다”며 “그 결정이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이 아닌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합헌이라 결정하였다. (계속)

 

 

※ 이 글은 2022년 5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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