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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미디어/게임

[리뷰]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2015): 더럽게 어렵고 더럽게 재밌다

by 김고기 님 2023. 10. 14.

Crypt of the NecroDancer: SYNCHRONY의 커버 이미지
<그림 1> 2022년 8월에 출시된 확장팩 <Crypt of the NecroDancer: SYNCHRONY>의 커버 이미지. 발매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크고 작은 업데이트가 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리 한 줄 요약: 리듬 로그라이크라는 기묘한 장르의 벽을 넘을 수만 있다면, 분명히 인생 게임이 될 작품.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Crypt of the NecroDancer)


개발: Brace Yourself Games
유통: Brace Yourself Games, Klei Entertainment
장르: 리듬 로그라이크
출시: 2015년 4월~
가격: 16,500원(본편 한정)
한국어: 지원

난이도(클리어): 매우 어려움
난이도(100%): 사실상 불가능
플레이 시간(클리어): 플레이어의 실력에 영향을 크게 받지만, 대략적으로 15시간 정도
플레이 시간(100%): 시간이 문제가 아님

 

참신한 아이디어와 게임성이 돋보이는 작품

 

지난 겨울 가장 재밌게 한 게임을 꼽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Crypt of the NecroDancer, 이하 <네크로댄서>)를 꼽겠다. 리듬 로그라이크라는 묘한 장르의 이 게임은 배우기는 쉬우면서도 게임은 깊고, 중독성은 엄청나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기본적으로 온갖 패러디로 점철된 작품이기도 하다. 거기에 리듬 게임답게 배경음악 또한 엄청나서, 일렉트로니카 장르 음악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던 나조차 이제는 가끔 흥얼댈 정도다.

 

로그라이크는 다양한 조건의 캐릭터를 이용해 무작위로 구성되는 던전을 탐험하는 장르다. 이쪽 분야의 시초격 작품인 <Rouge>(1980>를 따서 유사한 장르의 게임을 Rogue-like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보통 로그라이크 게임은 턴제로 진행된다. 한 칸 한 칸 고민을 거듭하며 최적의 코스를 찾아가는 게 로그라이크의 묘미다. 그런데 이 게임에선 그 턴이 리듬에 맞춰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일종의 실시간 턴제라고 보면 된다. 그러잖아도 로그라이크는 높은 난이도로 악명이 자자한데, 이 리듬 턴제 덕택에 <네크로댄서>는 아예 손조차 못 대는 사람도 많다.

 

<영상 1> <네크로댄서>의 출시 트레일러 영상.

 

어렵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고, 애초에 내가 어려운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게임은 정말, 진짜, 엄청나게 어렵다. 메인 콘텐츠 이전에 일종의 연습 격인 존 모드를 클리어한 사람이 전체의 9%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놓고 아예 안 하는 사람이나 맛만 보고 끄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심각한 수치다. 그리고 연습을 지나 메인 콘텐츠 격인 모든 지역 모드를 클리어한 사람은 4% 정도. 나도 처음 이틀 정도는 도저히 플레이할 수가 없어서 잠시나마 환불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도 확실히 재미만큼은 끝내줬다.

 

이것도 게임은 게임인지라, 수십 번 수백 번을 죽어가며 일주일 남짓 플레이한 결과 드디어 모든 지역 모드를 깰 수 있었다. 손으로는 리듬을, 머리로는 패턴을 익히니 할 만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렇게 일일 던전에서 10위권에 들 만큼 열심히 해도 가끔씩 손이 꼬이고 머리가 꼬여 죽는 걸 보면 역시 보통 게임은 아니다.

 

기본 캐릭터는 튜토리얼이었을 뿐

 

기본 캐릭터인 케이던스를 클리어한 겸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플레이하길 한 달. 전체 11 캐릭터(본편 기준) 중 9 캐릭터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먼저 승려. 승려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이 캐릭터의 특징은 돈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돈은 아이템을 사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게임의 점수인지라 그냥 습관적으로 먹게 된다. 다른 게임이라면 웬만하면 이런 실수는 없을 건데, 이건 어쨌든 리듬 게임이다. 생각이 미치기 전에 리듬에 손이 먼저 움직여서 죽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지막 보스 방으로 가다가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먹고 죽었을 땐 너무 충격이 커서 사흘 넘게 이 게임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또 벽이나 타일에 코인이 가려져서 제대로 못 보고 죽는 것도 수십 차례 반복했다. 특히 존 3의 용암 타일에 1코인이 놓여 있는 건 수십 시간을 플레이한 지금도 여전히 헷갈린다. 혈전을 끝냈는데 너무 급하게 싸우다 보니 돈에 갇혀버려(몬스터가 죽으면 그 자리에 돈을 남긴다)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했던 게임도 있었다. 하루 2시간씩 일주일 내내 도전해서 겨우 깼던 거 같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 한다. 여기까지 온 사람이 전체의 0.5%다.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44; 승려로 플레이 중인 모습
<그림 2> 승려로 플레이 중인 모습. 까딱 잘못하면 돈(코인) 때문에 오도 가도 못 하는 경우가 생긴다. (출처: Mister Pants의 You Tube)

 

볼트라는 캐릭터는 노트가 2배속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한 턴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절반이 되는 셈이다. 어렵지 않을 거 같지만, 일단 손가락이 아프다. 로그라이크 게임은 퍼즐적 요소도 커서 어느 정도 생각을 하며 움직여야 하는데, 이 캐릭터는 그럴 수가 없다. 그냥 움직이는 거다. 하드 액션도 또 이런 하드 액션이 있나 싶더라. 마찬가지로 박자 2배 옵션을 가진 데스 메탈이 후반부 보스로 나오면 그냥 죽었다 생각하는 게 편하다. 그래도 즉사 요소가 없고, 아이템도 쓸 수 있었던지라 운 좋게도 1주일 정도 만에 클리어할 수 있었다.

 

나머지 캐릭터는 한 시간 정도 해보고 바로 깨달았다. 이건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없다. 나는 어려운 게임을 정말 좋아하고, 또 끝내기로 마음먹은 과제는 수개월이 걸려서라도 꼭 달성하는데, 이건 그냥 물리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경지였다. 아마 이 정도면 전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캐릭터(아리아)는 박자를 틀리면 바로 죽는다. 대략 20~30분 정도 걸리는 전체 미션 동안 단 한 번이라도 틀리면 말이다. (아이템을 통해 딱 한 번은 봐준다.) 리듬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힘든지 바로 알 테다. 보통 리듬 게임은 노트를 외우기라도 하지, 이건 무작위로 생성되는 던전에서 그때그때 판단을 해가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도 한계가 있다. 사실 기본 캐릭터를 플레이할 때 안 되겠다 싶으면 박자를 흘려보내는 식으로 플레이했던 터라 이 습관을 잡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44; 하드 모드 캐릭터인 아리아를 소개하는 메시지
<그림 3> 하드 모드 캐릭터 아리아를 소개하는 메시지. 한번만 맞아도 사망합니다. 박자를 놓치면 사망합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가장 심각한 제한은 데미지도 가장 약하고 사거리도 가장 짧은 무기인 기본 단검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기 사용만 가능했어도 이렇게까지 고생하진 않았을 테다. 대략 하루 두어 판씩 두 달 이상 플레이하고 있는데... 글쎄, 한 일 년 정도 더 도전하면 깰 수 있으려나?

 

해금조차 못 한 최악의 캐릭터는 이 모든 조건을 다 갖고 있다. 돈을 먹어도 즉사, 박자를 틀려도 즉사인데 그 박자는 2배다. 사실 이 캐릭터는 플레이하겠단 생각조차 안 든다. 심지어 클리어 도전 과제 명칭도 "불가능한 거, 맞죠?"(Impossible, Right?)다. (나쁜 개발자 놈들...) 그런데 깬 사람이 있긴 하다더라. 전 세계에 10명인가? 여하튼 이건 만든 놈이나 하는 놈이다 다 이상하다.

 

게이머 인생에서 재미없어서 때려치운 건 있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포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도 없을 거 같다. 심지어 나는 그 <코만도스>를 노 킬로 클리어했던 사람인데도 말이다. (사실 세이브/로드가 가능한 게임은 웬만해선 어려워질 수가 없다고 본다. 한 번 죽으면 끝인 게 로그라이크의 악명을 뒤높이는 요소이기도 하고.)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44; 3지역의 모습
<그림 4> 처음 진입하면 엄청난 난이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3지역의 모습. 오랜 플레이로 일일 퀘스트 월드 랭킹에 들어가게 된 지금까지도 3지역은 부담스러운 곳이다.

 

2023년 현재, <네크로댄서>에는 두 편의 확장팩, AMPLIFIED(2017)와 NYNCHRONY(2022, 다만 정식 발매는 아니고 앞서 해보기 상태)가 발매되었다. 본편이 일반적인 게이머가 즐기기엔 장벽이 너무 높다는 점을 받아들였는지 확장팩에서는 난이도가 크게 낮아졌다. 본편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성능이 과도하게 좋은 아이템이 다수 추가되었고, 여러 옵션을 통해 난이도도 낮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니아들은 그 점을 크게 아쉬워하고 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앞의 리뷰는 본편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선 다소 과정되게 서술된 면도 있다. 댄스 패드 모드와 음유시인으로 플레이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이 되니, 마음 편히 입문해 보시라!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Crypt of the NecroDancer)

2015년 4월 | 리듬, 액션, 로그라이크

장점
  • 창의적인 시스템과 게임성만으로도 훌륭한데, 거기에 분위기와 연출, 음악까지도 최고다. 잘 만든 게임이라는 수식이 정확하게 어울린다.
  • 심각하게 어렵고 심각하게 재밌다. 일단 마의 10시간 벽을 넘길 수 있는 성향의 게이머라면, 이 게임은 반드시 당신의 인생 게임이 될 것이다.
  • 콘텐츠가 매우 풍부해서 돈이 아깝지 않다. 라이트 유저와 하드 유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
  • 그 덕택에 평생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몇 주, 몇 달 동안 안 하다가 다시 잡아도 재밌다.
  • 어려운 만큼 성취감도 상당하다. Speed Demon 도전 과제를 따고선 정말 환호성을 질렀다.
  • 이 게임을 하고 나면 웬만큼 어려운 게임도 안 어렵게 느껴진다. 내 손에 자신감이 붙는다.
  • 윈도우뿐만 아니라 맥, PS4, iOS, 닌텐도 스위치 등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한다. 물론 스마트폰으로는 플레이가 상당히 제한된다.

단점
  • 어렵다. 너무 어렵다. 제대로 하려면 최소 10시간 정도는 죽으면서 연습해야 한다.
  • 처음 시작하면 1분도 못 버티고 죽을 것이다. 어쩌면 30초도 못 버틸 수도 있다.
  • 그다음 판도, 다다음, 다다다음 판도 마찬가지일 거다.
  • 그러니 자꾸 죽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그냥 하지 말자...
  • 박자감과 순발력이 떨어진다면 정말 손도 못 댈 수 있다. 포위당한 상태에서 박자를 놓치면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 된다.
  • 나의 뇌가 나의 것이 아니고 나의 손이 나의 것이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박자를 놓치고 춤추는 해골들에게 두둠칫 두둠칫 처맞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게임하나 자괴감이 든다.
  • 도전 과제 100% 달성이 불가능하다. 정말 불가능하다. 수집 요소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거슬릴 수 있다.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44; 고난이도 도전 과제들
<그림 5> <네크로댄서>의 고난이도 도전 과제들. 위 세 개는 죽어라 연습하면 언젠가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아래 두 개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불가능에 가까울 테다.

 

 

※ 이 글은 2017년 5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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