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사람과 친밀한 동물이라고 하면 흔히들 개와 말을 꼽는다. 하지만 수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둘기가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야 도심의 흉물 '닭둘기'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기까지 했지만, 한때 평화와 우정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이 되기 전에도 비둘기는 특유의 귀소본능과 방향감각으로 우편 배달부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융숭한 대접을 받아 왔다. 비둘기는 최고 70km을 넘나드는 시속으로 500~600km를 비행할 수 있다. 그래서 무전과 전화가 없던 시절 잘 훈련된 비둘기는 특히 전쟁에서 통신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런 비둘기들을 '전서 비둘기(전서구)'라고 한다.
가장 최근 전서 비둘기가 임무를 완수한 기록은 1982년 미국 록히드 사의 사례이다. 록히드 사는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설계도를 연구소에서 48km 떨어진 산 속에 있는 실험기지로 전달하기 위해 비둘기를 활용했는데, 차로 운반하는 것보다 약 2배가 빨랐고 잘못 전달되거나 분실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이처럼 전서 비둘기들이 활약한 사례를 알아보고자 한다.
2. 전서 비둘기와 관련된 기록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비둘기를 문서 전달에 이용한 흔적이 있다. 또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에 이르러선 비둘기를 이용해 편지를 보내는 것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기원전 12세기)에서도 비밀문서를 외부로 전달했던 전서 비둘기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특히 올림픽 경기 결과를 각 도시로 알리는 데 비둘기가 이용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감옥에서 외부의 왕당파와 소통하기 위해 비둘기를 이용했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에는 파리가 완전히 포위되자, 파리 수비대장은 전서 비둘기를 이용해 파리 외곽의 프랑스 군단에게 긴급상황을 전달해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가 맞붙은 에슨 전투와 마른 전투에서는 72마리의 비둘기가 총 78개의 주요 문서를 전달했다. 전쟁의 막바지이자 자동소총의 활약으로 유명한 뮤즈-아르곤 공세 당시에는 442마리의 비둘기가 총 403개의 문서를 전달했는데, 이 중 잘못 전달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전서 비둘기가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 시기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기간이다. 이 시기 독일과 일본, 영국 등에서는 아예 전서 비둘기와 관련된 별개의 부대가 존재할 정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이 사용한 전서 비둘기만 해도 10만 마리에 달했고, 이후 휴대용 무전기가 일반화되기까지 약 50만 마리의 비둘기가 각국에서 운용되었다. 개중에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 뒤 훈장이나 영웅 칭호를 받은 비둘기도 있었다.
3, 훈장 받은 비둘기
'베르덩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최대 격전지로 꼽힐 뿐만 아니라, 전쟁사를 통틀어 가장 소모적이고 유혈이 낭자한 전투로 평가된다. 1916년 2월 11일을 시작으로 이후 10개월 동안 독일과 프랑스는 4천만 발에 달하는 포탄을 쏟아 부었으며, 양측은 총 63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희생을 냈다. 이 전투는 탱크와 독가스가 처음 등장한 전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투 당시 이 일대의 치열한 포화를 뚫고 프랑스군의 한 전서 비둘기가 중요한 문서를 전달해 주었는데, 그 내용은 정확히 전해지지 않지만 굉장히 귀중한 정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서를 전달한 비둘기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죽고 만다. 전투가 끝난 후 프랑스군은 이 비둘기의 용감한 업적을 기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사실상 2차 대전 시기에는 무전이 일반화되면서 전서 비둘기의 효용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1942년 봄, 영국군의 잠수함 한 척이 독일 공군의 폭격을 받아 키와 부상 장치가 파손되는데, 무선통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물속인지라 승무원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한 승무원이 기지를 발휘하는데, 마침 잠수함 속에 있던 두 마리의 전서 비둘기에게 잠수함의 위치와 현재 상황을 나타낸 문서를 담아 탈출용 캡슐에 넣어 어뢰발사관을 통해 발사한 것이다. 이 비둘기들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뚫고 본대에 문서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승무원들은 무사히 구조된다. 이후 이 비둘기들은 훈장을 수여받고 잠수함의 정식 승무원이 된다.
영국에는 또 다른 비둘기 스타도 있다. 1930년대 영국 공군에서는 비행기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전서 비둘기가 탑승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무선 통신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던 시점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 조치를 쓸데없는 낭비라 비난했었지만, 그 여론을 일거에 뒤집는 사건이 일어난다. 2차 대전 초기, 영국의 폭격기 한 대가 노르웨이 해역에서 엔진 고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승무원들은 추락에도 살아남은 한 마리 전서 비둘기에 모든 희망을 걸고 날려보낸다. 이 비둘기는 겨울 북해의 강풍과 추위를 뚫고 무사히 기지에 도착, 조난 사실을 알리는 데 성공한다. 당시 공군 본부는 추락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수색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사실상 수색을 포기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둘기를 통해 사고 현장을 추측할 수 있었고, 마침내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던 승무원 전원을 무사히 구조하는 데 성공한다. 해당 비둘기는 이후 공로상을 받게 된다.
4. 전서 비둘기를 잡아라!
이처럼 전서 비둘기가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다 보니,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루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조처가 비둘기의 천적인 매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의 비둘기 사냥 성공률이 썩 좋은 것이 아닌지라,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매의 공격으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귀환한 비둘기도 있었다. 크게 다치긴 했지만, 문서는 빼앗기지 않고 무사히 전달했으니 임무는 완수한 셈이다.
영국에서는 '비둘기 부대'와 유사하게 아예 별도의 '송골매 부대'를 창설하여 매를 체계적으로 훈련하기에 이르는데, 실제 2차 대전 중 독일의 전서 비둘기가 훈련된 매에게 체포(?)되어 비밀문서가 유출된 적이 있었다. 이 문서는 영국 내에 잠입해있던 독일 정보원들에게 전해질 것이었는데, 영국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국내에 잠입해 있던 스파이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5. 나오며
<건담>과 <은하영웅전설> 등의 SF 시리즈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미래의 전술이 오히려 과거로 회귀한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실제로 통신 기술이 발달한 2차 대전 중에도 많은 수의 전서 비둘기가 운용되었으며, 한국전쟁에서도 여러 전서 비둘기가 활약했었다. 이는 오늘날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적의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고, 전파 방해나 교란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통신수단으로서 전서 비둘기의 역할이 다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은 2010년부터 전서 비둘기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사이버 전쟁 시대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둘기, 참 역설적인 광경이 될 테다. (끝)
<참고자료>
김종환, 2000, 『책략 : 뉴밀레니엄과 비대칭전략』, 신서원.
연강학술재단, 1984, 『세계상식백과』, 리더스 다이제스트.
우학선 엮음, 1987, 『비밀전 <상>』, 명지출판사.
김형자, 2010, "중국이 '퇴역 비둘기' 재징집 나선 까닭", 『시사저널』 1106호.
이진례, 2010. 2. 17, "21세기에 '전서구'…혼돈의 시리아", MBN 뉴스.
※ 이 글은 2013년 2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갱신된 사실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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