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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미디어/IT

이글루스는 왜 문을 닫게 되었을까: 블로그 서비스의 과거와 미래

by 김고기 님 2023. 4. 25.

<목차>


  1. 이글루스를 떠나며
  2. 블로그, 그리고 블로그 서비스의 탄생
  3. 포털과 한몸이 된 블로그
  4. 이글루스의 대장정
  5. 블로그의 전성기는 언제죠?
  6. 블로그 시대의 종말?
  7.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8. 포털과 화학적으로 융합된 네이버 블로그
  9. 이글루스는 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을까?
  10. 블로그, 그리고 블로그 사업의 미래
  11. 블로그 서비스의 현재: 어떤 서비스를 선택해야 할까?
  12. 이글루스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미리 세 줄 요약

 

① 1990년대 중반, 개인 홈페이지 일기로 시작된 weblog는 IT 버블을 거치며 인기 서비스로 성장한다. 회원과 콘텐츠 증가를 원했던 포털 사업자들은 블로그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점차 둘은 한몸이 된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블로그 서비스는 초기 형태의 소셜 미디어로 진화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개인 브랜딩 장소이자, 1인 미디어로 블로그를 이용하기 시작하며 블로그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② 블로그 사업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고정 비용이 들지만, 큰 수익은 기대할 수 없는 사업이다. 2000년대 후반, 마케팅과 연계된 블로그의 등장과 흥행은 기존 블로그의 개념을 뒤흔든다. 이는 블로그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을 불러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블로그는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블로그 업계의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

 

③ 세계 각지 포털이 구글에 굴복하던 와중 '네이버'는 쇼핑 플랫폼으로 진화함으로써 포털 자신도, 블로그 서비스도 성공적으로 생존·성장시켰다. 그러나 '이글루스'를 비롯한 블로그 서비스들 모 포털의 여력부터가 한계적이었던 만큼 더욱 힘을 잃게 된다. 살아남은 서비스들은 이제 포털에서 벗어나 전문 영역을 강조·강화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고 있다.

 

1. 이글루스를 떠나며

 

2023년 3월 13일, 이글루스가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종료일은 2023년 6월 16일). 이글루스가 설립된 게 2003년이니 20년 만에 문을 닫게 된 셈이다.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공지
<그림 1>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 공지. (출처: 이글루스)

 

나도 2010년부터 이글루스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개인 작업물의 아카이브 겸 학습 노트로 썼으니 운영했다는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독자로서 함께한 기억을 포함한다면 스스로 이글루스라는 커뮤니티의 구성원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웹과 함께 자라온 사람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글루스를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 신세라지만, 한때 이글루스는 정말 굉장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초기(2003~2009)의 이글루스는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성장한, 또는 인터넷의 확산 자체에 기여한 각종 오타쿠 문화의 수도와도 같았다. 정보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던 그 시절, 이글루스의 유명 블로거들은 세계 각지의 콘텐츠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심지어는 번역과 논평까지 덧붙여 올리곤 했다. 2차 창작이라는 개념이 막 생겨나던 시절에도 이글루스에는 ‘금손’들의 작품이 가득했다.

 

사실 이때의 이글루스를 오타쿠라고만 정리하기엔 아쉬움이 생긴다. 이글루스가 당시 다른 서비스(특히 네이버 블로그)와 남달랐던 건 (상대적) 전문성이었다. 이글루스의 유명 블로거들은 블로그가 개인 일기장을 넘어 전문 미디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리뷰를 올리던 블로거는 애니메이션으로 책을 냈고, 자기 연구 이야기를 공유하던 대학원생은 교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른 서비스라고 해서 이런 사람들이 없었겠느냐마는, 이글루스는 PC 통신에서부터 흘러들어온 연령대 높은 오타쿠 및 실제 현업 전문가들의 존재로 인해 다른 서비스에 비해 '전문성',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서비스 이용자들도 비슷하게 여겼고, 이글루스 이용자들도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랬느냐와는 별개로 말이다.

 

2005년 이글루스
<그림 2> 2005년 '이글루스'의 메인 화면. 라떼는 말이야, 이글루스가 짱이었단다. 네이버 블로그는 초딩들이나 쓰는 거였고, 디시조차 이글루스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지. (출처: "아이뉴스24"에서 재인용)

 

그렇다면 그 대단하던 이글루스는 어쩌다 서비스 종료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2. 블로그, 그리고 블로그 서비스의 탄생

 

서비스가 문을 닫는 이유는 간단하고도 명확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용자가 적어도, 문제가 많아도 돈이 된다면 서비스는 유지된다. 그리고 블로그 서비스는 원래 돈이 안 되는 사업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블로그의 탄생과 발전에 대해 간략히 짚어 보자.

 

인터넷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이를 이용한 사업이 떠오르던 닷컴 버블 시기(1996~2000),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온갖 것들 것 원류가 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블로그도 그중 하나다.

 

최초의 블로그란 개인이 서버와 호스팅을 직접 운용하는 홈페이지의 일종이었다. 다만 그 홈페이지의 내용이 일기(일지, log)였기에 weblog라 명명되었고, 이것이 blog로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HTML 코드도 직접 짜고, 업데이트도 FTP 등을 통해 직접 해야 했다. 이러한 기술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등장한 서비스가 ‘설치형 블로그’였고, 극초기의 블로그 서비스란 '설치형 블로그'와 동의어로 여겨졌다.

 

시간이 흐르며 가장 귀찮고 어려운 서버 문제도 해결해주는 서비스(회사가 서버를 제공하는)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이런 '서비스형 블로그' 또는 '가입형 블로그'가 블로그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여겨지게 된다.

 

새로운 천 년을 앞두고 초연결 개념이 태동하던 그 무렵(1998~2000), 사람들의 자기표현 욕구를 저격한 블로그 서비스는 서구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여러 블로그 서비스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다소 개념적 간극은 있지만, 마이크로 블로그로 분류될 수 있는 한국의 '싸이월드'가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1999).

 

Open Diary
<그림 3> '서비스형 블로그'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Open Diary'의 메인 화면. 1998년 출시된 'Open Diary'는 온라인 일기 사이트로 출발해 오늘날 블로그 개념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 서비스에서 나온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댓글'이다. (출처: 워드프레스닷컴 'CEMETERY CLUB'에서 재인용)

 

초기의 블로그 서비스는 주로 '일기'를 콘셉트로 단독 서비스되었는데(즉, 블로그 회사는 블로그 서비스만 운용하였는데), 마찬가지로 막 태동하여 피 튀는 혈전을 벌이던 포털-검색 사이트들 역시 블로그 서비스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사용자를 회원가입으로 이끌고 자사의 콘텐츠를 늘리는 데 이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서비스형 블로그의 성장을 바라보던 포털 회사들은 앞다퉈 블로그 서비스를 출시하기 했고(네이버, 다음), 기존 블로그 서비스를 인수하는 사례도 있었다(구글, 라이코스).

 

3. 포털과 한몸이 된 블로그

 

한국 블로그 서비스의 선발주자는 이메일·카페 등 여타 서비스들이 다 그렇듯 다음(1999)이다. 순수 블로그 서비스 사업자로서 최초 사례는 지금은 사라진 블로그인(2003)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은 한국 블로그 서비스로선 특별한 해인데, 이글루스를 포함해 파란 블로그, 엠파스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등이 모두 이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블로그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들의 수요가 급격하게 커졌다는 것이고, 포털 업체들로선 이 흐름을 따라야만 했다는 뜻일 테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한국에서 블로그 서비스는 이메일이나 카페처럼 당연히 무료로 여겨졌다. 해외에 비해 한국에서 독립 블로그 서비스가 어려웠던 건 이처럼 블로그의 개념 자체가 포털과 함께 확산된 데 기인한 바가 크다. 물론 프리챌이나 다음이 커뮤니티·이메일 유료화 논란으로 크게 휘청였던 걸 떠올려보면 이게 블로그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닐 테다.

 

본질적인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블로그 서비스가 도무지 돈 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는 사업이란 점이다. 블로그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상당한 자원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에디터를 개선하고,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설치형 블로그의 "가장 귀찮고 어려운" 문제, 서버 문제였다. 서버는 산소와도 같아서 없으면 서비스를 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계속해서 유지비를 잡아먹는다.

 

서비스형 블로그는 이용자에게 서버를 제공하며 급격하게 성장했지만, 일부 이용자들은 이 서버를 개인용 무료 호스팅이나 파일 저장소처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무단 전재와 더불어 한때 이글루스 이용자들이 엔하위키나 디시인사이드 등의 이용자들을 비판하던 이유기도 하다. (물론 실제론 이용자들 간의 교집합이 상당했다.)

 

이글루스 외부 링크 차단 공지
<그림 4> 2011년 이글루스의 외부 링크 차단 공지. 당시에는 플짤(플래시 짤방) 문화가 유행했었는데, 플래시 파일을 직접 업로드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많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글루스나 티스토리에 업로드한 후 이를 링크해서 사용하곤 했다. (출처: EBC (Egloos Broadcast Center))

 

서버 문제는 블로그 사업자들이 외부 링크를 제한하며 점차 해결되어 간다. 다만 넉넉한 서버 제공이 후발 블로그 사업자들이 내세우던 강점이자 새로운 사용자를 블로그 생태계로 이끄는 역할도 했던 만큼, 이러한 정책 변경은 기울어가는 블로그 업계에서 사업자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고육지책에 가까웠을 것이다.

 

한국 최초의 서비스형 블로그이자 블로그 서비스만 운영하던 '블로그인' 역시 수익 모델 문제로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렇기에 특히 한국에서 블로그 사업은 그 자체로 수익을 만드는 사업이라기보다는 포털에 부속된, 포털의 서비스를 보조하기 위한 부가 사업 정도로만 여겨졌고 독립 서비스를 진행하던 곳들도 포털과 제휴하거나 아예 인수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블로그가 포털과 한몸이 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블로그인
<그림 5> 2014년 '블로그인'의 메인 화면. '블로그인'은 선발 주자(2003년 2월)로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으나, 수익화 과정에서 이용자들과 마찰을 빚은 후 힘겹게 서비스를 이어 가다 종료 공지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Cosmopolitan'에서 재인용)

 

4. 이글루스의 대장정

 

방랑의 세월이 길어서 그렇지, 이글루스도 대기업 포털 출신이다. 2003년 온네트라는 회사에서 처음 개발된 이글루스는 2006년 싸이월드와 네이이트온으로 유명한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었고, 대형 포털(!) 네이트와 한솥밥을 먹게 된다.

 

한국에서 블로그는 포털에 부속된 서비스였기에, 모회사의 위기는 곧 블로그의 위기이기도 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은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급격히 쇠락하였고, SK커뮤니케이션즈는 각종 서비스를 분사·매각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이글루스도 2013년 별도 법인을 잠시 거쳐 알집, 알약 등으로 유명한 이스트소프트의 자회사 줌인터넷으로 인수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이 인수도 줌인터넷의 포털 사이트 zum과의 시너지를 노린 것이라고 한다.

 

2021 싸이월드
<그림 6> '싸이월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2021) 미니홈피의 모습. ᥐㅣ억ㅎrᏓㅣ...? 우ㄹㅣ의 추억... (출처: 유튜브 'CYWORLD' 채널)

 

2006년에도, 2013년에도 인수자들은 이글루스 블로거들의 "전문성과 깊이를 갖춘 콘텐츠"를 주요한 인수 이유로 들었다. 그만큼 이글루스는 전문성이란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5. 블로그의 전성기는 언제죠?

 

하지만 2013년, 아니 2011년 시점에서도 블로그는 이미 저물어가는 서비스였다. 블로그의 전성기가 언제냐는 질문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할 순 있겠지만 사용자 유입과 활성 사용자로 본다면 2005년~2008년, 위상이나 역할로 본다면 2007년~2010년 정도를 지목할 수 있을 듯하다.

 

1996년 단순한 개인용 웹 일지로 출발한 블로그는 2000년을 지나며 초기 형태의 소셜 미디어가 되었고, 2004년쯤에는 개인 브랜딩의 장이자 1인 미디어로서 위치를 공고화한다. 이후 미디어로서의 기능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2010년을 지나면서는 거대 기업과 더불어 공공기관, 심지어는 정부와 지자체조차 블로그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이제 블로그는 하나의 특정한 서비스보다는 웹과 연계된 개별 미디어 시스템 전반을 지칭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블로그가 날개를 달기 시작한 건 마케팅과 연계되면서부터다. 광고가 아닌 개인 사용자의 순수한 경험과 평가라는 이미지는 기업으로부터 일방적인 정보 전달 위주의 기존 마케팅에 일약 변동을 가져왔고, 인터넷이 여가나 업무와 같은 특수목적 도구를 지나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블로그 마케팅의 등장은 마침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던 웹 광고 중개 서비스(구글 애드센스)와 더불어 전업 블로거를 만들며 블로그를 하나의 산업으로 진화시켰다. 블로그 서비스는 돈이 안 되지만 블로그는 돈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구글 애드센스
<그림 7> 구글 '애드센스'의 메인 화면. 지금이야 콘텐츠, 조회수가 돈이 된다는 게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초기의 블로그는 오로지 기여와 헌신, 그리고 덕질로 운영되었다. 그런 와중 등장한 '애드센스'는 콘텐츠-서비스 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다. (출처: Google 애드센스)

 

6. 블로그 시대의 종말?

 

많은 이들이 마케팅과 융합된 블로그의 등장과 흥행(대략 2005~2007년경)이 블로그의 종말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블로그를 초기의 정보성 콘텐츠, 중기의 1인 미디어 개념으로만 접근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블로그 마케팅 자체는 블로그의 어마어마한 양적 성장을 불러왔다. 비슷한 시기 마케팅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유럽의 넷로그나 일본의 아메바 블로그, 구글의 블로거 같은 서비스 역시 쇠락해간 걸 보면 광고 문제는 부차적이란 걸 알 수 있다. 본질은 사람들이 콘텐츠 소비하는 방식이 변했다는 것이다.

 

2006년 전후를 풍미한 서비스형 블로그는 2008년을 지나며 마이크로 블로그에 급격히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마이크로 블로그라는 단어조차 잘 사용하지 않지만, 사실 페이스북과 트위터, 텀블러가 바로 마이크로 블로그다. 당시로선 비교적 생소했던 이 서비스를 업계는 ‘마이크로 블로그’라고 분류했는데, 이는 편집하고 가공한 긴 콘텐츠를 게시하는 게 보편적이던 블로그에 비해 단문으로 간단히 써서 일단 게시하고 보던 특성을 강조한 명명이었다. 여기에 기존 블로그에선 메타 서비스를 통해 드문드문 이루어지던 사용자들 간의 네트워킹을 크게 강화하니, 이른바 소셜 미디어(또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SNS)의 시작이다.

 

2008년 페이스북
<그림 8> 2008년 '페이스북'의 모습.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네트워킹 서비스로 2004년 시작된 '페이스북'은 이 시기를 거치며 지금과 같은 형태를 완성했다. (출처: "CNET"에서 재인용)

 

7.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가 열리며 블로그가 가장 먼저 빼앗긴 기능은 개인 혹은 기업 미디어로서의 역할이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훨씬 더 모바일 친화적이었고, 콘텐츠의 확산에도 유리했다. 자신의 의견을 알리고 싶던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빠르게 페이스북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기업 또한 고객과 소통하는 최전선을 소셜 미디어로 선정했다.

 

블로그 서비스들은 변화를 강요받았지만, 모바일 대응 정도를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이건 사업자들이 문제라기보단 웹 기반 텍스트 콘텐츠 자체가 힘을 잃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형식 그 자체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또 10년이 흘렀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시대는 이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의 시대로 바뀌었다.

 

2023년 현재 많은 이들이 블로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한국 블로그의 부정적 표본으로 여겨지던 네이버 블로그는 여전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더 커지고 더 강해지고 있다. 한때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이 뚫리고 이를 악용한 마케팅이 범람했지만, 이제 네이버 블로그는 명실상부 한국 블로그 서비스의 최고 사업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블로그 자체가 힘을 잃어가는 와중에 네이버 블로그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2022 네이버 블로그 리포트
<그림 9> '2022 네이버 블로그 리포트' 중에서. 특히 2020년 이후 네이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블로그 사용자의 증가가 이어지는 추세다.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네이버에 200만 개의 블로그가 새로 개설되었다고 한다. (출처: 2022 네이버 블로그 리포트)

 

8. 포털과 화학적으로 융합된 네이버 블로그

 

한국의 블로그 서비스가 포털과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는 건 먼저 확인했었다. 그렇기에 모 포털의 성공이 블로그 서비스의 성공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또 따지고 보면, 여러 나라의 검색 포털이 구글에 무릎을 꿇는 와중에도 네이버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혹자는 네이버가 쇼핑 사이트지 무슨 검색 포털이냐고 혹평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변신’했기에 네이버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서비스가 문을 닫는 이유는 돈이 안 되어서다. 네이버는 포털 시장이 지속적으로 개편되고 검색 시장이 급변하는 와중에 자체적인 쇼핑·콘텐츠 생태계를 중심으로 스스로를 플랫폼화했다. 특히 쇼핑은 그 자체로도 돈이 오가는 영역이니, 문 닫을 걱정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블로그의 기능적 역할을 다시 정리해보자. 태초의 블로그는 일기였고, 이후의 블로그는 전문가와 오타쿠들의 미디어였으며, 개인과 기업의 브랜딩을 위한 미디어를 거쳐, 마케팅을 주목적으로 하는 미디어까지 확장되었다. 각각의 영역은 서로 겹치거나 구분되지 않는 영역도 크다. 전문가의 일기와 작업물은 경계선이 모호하며, 여전히 많은 전문가가 자기 브랜딩을 위해 블로그를 운용한다. 평소에는 개인 브랜딩을 위해 식당을 리뷰하지만, 그 브랜딩의 목적이 돈을 받고 식당 광고 포스트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블로그가 마케팅과 융화되며 비로소 돈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네이버에서 물건과 서비스의 정보, 평가를 찾아보고, 네이버를 통해 그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한다. 네이버 외 블로그 사용자들과 일부 커뮤니티 회원들 사이에선 네이버를 무시하는 풍조가 있지만, 2023년 2월 발표된 오픈서베이의 「소셜미디어·검색포털 트렌드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여전히 90%가 넘는 사람들이 네이버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80%의 사람들이 특정한 정보를 탐색할 때 네이버를 활용한다. 구글이 20%를 겨우 넘는 것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다만 업무·학업에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는 40%까지 올라간다. 물론 네이버는 여기서도 80%다.)

 

2023 오픈서베이
<그림 10> 「소셜미디어·검색포털 트렌드 리포트 2023」 중에서. 특히 쇼핑 관련 탐색에서 네이버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출처: 소셜미디어·검색포털 트렌드 리포트 2023 - 오픈서베이 블로그)

 

이처럼 네이버 블로그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엔 모 포털인 네이버의 생존과 더불어 그 생존 요소와 화학적 융합에 성공했다는 데 있다. 그간 네이버 블로그의 기능 업데이트는 상당히 더디게 이루어져 왔는데(이게 문제라기보다는 더 추가할 기능이 딱히 없다는 쪽에 가깝다), 최근에 이루어진 기능 업데이트가 ‘블로그 마켓’(블로그를 쇼핑몰처럼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라는 것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9. 이글루스는 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을까?

 

이글루스가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이글루스를 제목에 내세우긴 했지만, 단지 이글루스에 해당하는 이야기만은 아닐 테다.

 

많은 블로그 서비스가 포털에 편입·융합되었지만, 종국엔 포털과 함께 사라졌다. 포털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포털과의 화학적·기능적 융합에 실패한 경우엔 블로그 서비스가 결국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포털에 탑재할 콘텐츠 정도로 유지하기엔 세상에 콘텐츠는 넘쳐나고, 블로그 서비스는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게 다음 블로그가 사라졌고, 이번엔 이글루스가 문을 닫게 되었다.

 

이글루스가 서비스를 종료한단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블로그의 2인자이자 전문가성을 유지하고 있는 티스토리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는데, 이 역시 모 포털인 다음(카카오)와 티스토리 간 화학적 융합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를 두고 일각에선 특유의 폐쇄성과 커뮤니티성, 이오지마로 표현되는 유저 간의 갈등, 전반적인 보수화를 꼽는다. 이는 이글루스의 종료를 당기거나 늦춘 원인이 될 수는 있어도, 서비스를 종료시킨 원인으론 다소 부차적이라고 본다. 근래 모바일 게임 산업에서 알 수 있듯, 사용자가 아무리 적어도, 사용자가 아무리 회사를 싫어하더라도 매출이 나오면 서비스는 어떻게든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글루스는 매출이 나올 곳도 막막한데, 모 포털인 zum과의 연계조차 제한적이었으니 서비스 종료는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종료 공지에서도 많은 이들이 “올 게 왔다”는 반응을 보였으니 말이다.

 

이글루스 종료 공지 댓글
<그림 11> 이글루스 종료 공지에 달린 이용자들의 댓글(닉네임 숨김). 아쉽고 감사했다는 반응과 더불어 백업과 이전 문제를 걱정하는 이용자들도 많다. (출처: EBC (Egloos Broadcast Center))

 

10. 블로그, 그리고 블로그 사업의 미래

 

블로그의 시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놀라운 것은 코로나19를 지나며 소셜 미디어(특히 페이스북)의 이용률은 줄었는데, 블로그 이용률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소셜 미디어 이용이 줄어드는 원인을 유튜브·틱톡 등 영상 매체의 성장과 더불어 관계 기반이 주는 피로감, 소비-전시 중심의 이용 문화, 블로그만큼이나 광고가 범람하게 된 점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블로그 이용이 늘어나는 건 블로그가 생존한 이유와 상통한다. 살아남은 블로그 서비스는 전문 영역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주거나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다.

 

먼저 살펴본 네이버 블로그는 네이버 자체가 주는 브랜딩의 가치와 더불어 마케팅의 장으로 변모했다. 블로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등장한 포스타입(2015)은 소셜 미디어(주로 트위터)에서 알음알음 이루어지거나 불안정한 플랫폼에서 진행되던 ‘커미션’(대가를 받고 그림 등 원하는 작품을 창작해주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창작자들은 어차피 포트폴리오 용도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블로그 자체에 결제·후원 기능을 탑재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다.

 

포스타입
<그림 12> '포스타입'의 메인 화면. '콘텐츠 오픈 마켓'을 내세우는 포스타입은 포털에 종속되지 않은 블로그 서비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출처: 포스타입)

 

velog는 개발자를 위한 블로그를 지향한다. 마찬가지로 개발자들 역시 학습 노트나 포트폴리오 용도로 블로그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 서비스는 코드를 쓰고 보기에 편의성이나 심미성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velog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2018년이라는 늦은 시기에 출범했음에도 사용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개인이 봉사에 가깝게 운영하고 있는 서비스라 장기 생존에는 불안감이 있다.)

 

네이버의 네이버 포스트나 프리미엄 콘텐츠, 다음(카카오)의 브런치, 심지어는 얼룩소 역시 블로그 서비스의 진화형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서비스는 기존 블로그 서비스에 부족했던 모바일 최적화와 더불어, 개인 홈페이지 시절의 유산인 ‘꾸밈’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고 ‘글을 쓴다’는 개념에 집중함으로써 전문가 미디어로서의 성격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11. 블로그 서비스의 현재: 어떤 서비스를 선택해야 할까?

 

이글루스가 멈추게 되면서 2023년 3월 현재 특수 목적이 아닌 일반 목적의 서비스형 블로그는 네이버 블로그(포스트), 티스토리, 워드프레스닷컴, 블로거 정도만 남게 된 상황이다(더 있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 한정). 가벼운 사용자로서는 사실상 네이버와 티스토리가 둘뿐인 선택지가 되었다.

 

사용자들의 이용 목적도 분화되어 네이버 블로그와 티스토리는 같은 블로그 서비스지만, 동일한 개념으로 묶기엔 교집합이 크지 않다. 브랜딩과 마케팅을 위해선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하는 게 낫고, 전문성을 살린 미디어가 되기 위해선 티스토리를 운영하는 게 유리하다. 다만 포털에서 네이버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네이버 블로그에서 전문성을 살릴 기회는 많지만, 티스토리에서 마케팅을 할 수 있을 여지는 제한적이다.

 

네이버는 아마 앞으로도 네이버의 자체적인 생태계를 강화할 것이고, 티스토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바깥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구글 애드센스를 운영할 수 있느냐(즉, 블로그 자체만으로 현금 수익을 만들 수 있느냐)도 중요한 선택 요소가 될 테다. (네이버도 유사한 애드포스트를 운영하긴 하지만, 애드센스와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까지도 수익 차이가 난다고 한다.)

 

서비스형 블로그가 아니라 설치형 블로그까지 생각하면 선택지는 훨씬 넓어진다. 이쪽에선 워드프레스가 판세를 굳혀가고 있다. (워드프레스닷컴은 워드프레스가 운영하는 서비스형 블로그다.) 특히 서비스형 블로그의 상업화와 포털 종속에 지친 전문가들이 워드프레스를 이용해 직접 블로그를 제작·운영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전문가성’ 문제와 더불어 과거로의 발전적 회귀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다만 설치형 블로그가 아무리 기술 부담을 줄여준다 하더라도 서버와 호스팅에 대한 기초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워드프레스
<그림 13> 대표적인 설치형 블로그 '워드프레스'의 메인 화면. 블로그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실상 콘텐츠 관리 도구이자 사이트 제작 도구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한편으론 웹이 발전함에 따라 웹사이트와 블로그 간의 구분이 희미해지거나 무의미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출처: WordPress.org)

 

12. 이글루스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삐~ 삐삐삐삐~

“왜 또 전화가 안 되냐?”

 

그 시절 나는 참 어렸지만, ‘새롬 데이터맨’으로 '천리안'에 접속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전화비가 많이 나왔다고 크게 혼 나서기도 하다…) '하이텔'이 사라질 때도 기분이 묘했고 'Palm OS'가 없어질 때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돌이켜 보니 결국 ICT의 패러다임이 변해가는 현장에 내가 서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PC통신에서 포털 사이트로, PDA에서 스마트폰으로.) 그리고 오늘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를 보며 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처음 이 글을 쓸 땐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 소식을 듣고 블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개인적 경험과 블로그의 발전사가 함께했던 순간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글루스가 어쩌다 무너지게 되었는지 나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결국 긴 글이 되고 말았다.

 

25년의 블로그사가 보여주는 건 결국 유연한 수용과 변화만이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모든 기술과 서비스, 나아가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내용일 것이다. PC통신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기능은 포털과 커뮤니티로 계승되었고, PDA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PDA폰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것처럼 말이다.

 

요즘 “구글이 야후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글루스가 생기던 2003년 무렵, 야후!는 가히 세계 최고의 포털이었고, 그 아성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야후!가 추락하는 데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시대, 구글이 예전처럼 대단해 보이지 않는 건 나뿐만은 아닐 테다. 마찬가지로 네이버의 시대가 어느 날 갑자기 저문다고 생각하면 가끔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식당 예약부터 각종 결제와 인증서까지 진출한 네이버를 보면 또 한편으로는 한국 IT 패러다임 전환은 완성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설령 네이버가 블로그 서비스를 종료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때면 이미 다른 서비스들이 모두 사라진 후가 아닐까?

 

영화 프리퀀시 포스터
<그림 14>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 <프리퀀시>(2000)의 포스터.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과거의 사람들에게 '야후'라는 암시를 준다. 주식을 사란 뜻이다. 이 영화가 나오던 시기까지만 해도 '야후!'는 성공한 인터넷 서비스의 대명사이자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인공지능 소식으로 시끄럽다. 어쩌면 우리는 또 한 번의 패러다임 전환 가운데 서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10년 뒤, 20년 뒤의 블로그 서비스와 블로그 사업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런데 weblog에서 log가 사라져도 여전히 블로그일 수 있는 것처럼, 설령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일지라도 블로그는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끝)

 

2023년 이글루스
<그림 15> 아마도 '이글루스'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될 2023년 3월의 메인 화면. (출처: 이글루스 홈페이지 스크린샷)

 

 

※ 이 글은 '얼룩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큰 틀에서 같은 글이지만, 매체의 성격에 맞춰 준비한 다른 내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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