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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미디어/IT

구제역 동물들은 '안락사'되고 있는 게 아니다

by 김고기 님 2023. 5. 9.

<목차>


  1. 들어가며: 구제역과 살처분
  2. 안락사용 근육이완제 석시콜린?
  3. 나오며: 인식 바로잡기

 

1. 들어가며: 구제역과 살처분

 

구제역은 소, 돼지, 양, 염소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질병이다. 주된 증상으로는 물집, 식욕부진, 발굽 탈락, 쓰러짐 등이 있다. 어린 개체가 아니라면 치사율은 높지 않으나 전염성이 매우 높아 '가축전염병 예방법'에서 특별히 관리된다. 무엇보다 육류의 상품성을 떨어트리고 출하 시기를 늦추기 때문에 축산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구제역은 치료법이 분명하지 않고, 백신도 경제성이 낮기 때문에 보통 감염된 가축을 살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감염되지 않은 경우라도 예방적으로 살처분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전염성과 경제적 피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구제역에 걸린 소
<그림 1> 구제역에 걸린 소의 모습. 거품 섞인 침을 흘리는 것 역시 구제역의 주된 증상이다. (사진: Pam Hullinger)

 

살처분은 약물을 통한 안락사로 이루어지지만, 2011년 한국처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될 경우는 산 채로 수백 마리를 그냥 구덩이에 파묻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바로 저 '안락사'의 과정이다.

 

2. 안락사용 근육이완제 석시콜린?

 

다음은 구제역이 한창 창궐하던 2011년 당시 《연합뉴스》 기사의 일부이다.

 

구제역 가축의 안락사에 사용하는 중국산 근육이완제의 체내 흡수가 늦어 수의사가 고통을 겪고 있다.

14일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에 따르면 구제역이 확산되며 안락사용 국산 근육이완제 석시콜린(Succicholine)이 동이 나 지난 9일부터 중국산 석시콜린 앰풀 3만3천개를 긴급수입해 살처분에 사용하고 있다.

석시콜린은 소의 경우 무게에 따라 1~3개 엠풀을 투여하고 돼지는 내성이 강해 2배가량 더 투요한다.

근육이 풀리며 가축이 주저않고 심장근육도 이완돼 안락사하는데 국산 석시콜린을 사용했을 때 혈관주사는 1~2분, 근육주사는 3~5분이면 쓰러져 매몰이 가능했다. (후략)

출처: 최찬흥, 2011. 1. 14, "중국산 가축 안락사약 효과 떨어져..수의사 고통", 《연합뉴스》.

 

위 기사뿐만 아니라 구제역과 관련한 많은 자료들이 안락사용 약물로써 석시콜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석시콜린(Succinylcholine)이 안락사용 약물이 아닐뿐더러, 안락사의 효과도 전해 낼 수 없다는 데 있다.

 

석시콜린은 단순한 근육이완제이다. 석시콜린으로 유도되는 죽음은 호흡근육의 마비로 인한 질식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심장이 스르르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석시콜린이 투여된 동물은 (인간을 포함하여) 의식과 감각이 멀쩡한 상태에서 서서히 호흡이 끊기며 죽어가게 된다. 이것은 '안락사'가 아니다. 석시콜린 주사로 죽이는 것보다 총으로 쏴 죽이는 게 더 인도적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다음은 석시콜린주사 사용 설명서의 일부이다.

 

5.  일반적 주의

1) 호흡억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 약 사용에 앞서 가스호흡기 또는 인공호흡기를 준비한다.

(중략)

3) 이 약을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가스마취기 또는 인공호흡기를 준비하고 사용시 호흡정지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인공호흡 및 삽관에 숙력된 의사에 의해서만 사용한다. 충분한 근이완을 얻으려고 할 경우, 전혀 호흡억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술한다는 것은 곤란하며, 또한 호흡정지를 경계하면 필요한 근이완을 얻지 못할 수 있다.
호흡정지가 나타난 경우에는 이 약의 주입을 근이완유지에 필요한 양으로 감소시키거나, 일단 투여를 중지하고 인공호흡으로 산소를 보급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이 약 20-40mg 투여에 의해 발생하는 호흡정지는 약 2-5분 후에 회복된다. 이 약에 의한 호흡정지는 주입 후 매우 빠르게 나타나므로, 인공호흡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사전에 설비, 기타준비 및 점검을 철저히 한다.

4) 이 약은 의식상태에서는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므로 완전히 마취되지 않은 환자에는 투여하지 않는다.

(후략)

 

애당초 석시콜린은 안락사를 위한 약물도 아닐뿐더러, 호흡정지로 인한 사망은 약품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에 해당하는 셈이다. 설명서는 호흡정지가 일어날 때의 고통에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마취 이후 투약할 것을 권고한다.

 

석시닐콜린 염화물
<그림 2> 석시닐콜린 염화물 주사제의 모습. '석시콜린'은 일종의 제품명으로, 원료는 '염화석사메토늄'에 해당한다. (출처: Life-Assist)

 

미국 농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에서 발행한 Report of the AVMA Panel on Enthanasia는 석시콜린을 단독으로 안락사용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다른 자료에서도 석시콜린을 사용하는 경우 반드시 마취가 선행될 것을 규정한다.

 

3. 나오며: 인식 바로잡기

 

구제역이 돌 때마다 안락사를 넘어 생매장까지 되는 만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근본적으로 '석시콜린은 안락사 약물'이라는 광범위한 오해를 지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실제로 석시콜린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했단 이야기가 종종 들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무통 효과는 프로포폴 등의 마취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석시콜린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임상에서 석시콜린이 사용될 때도 보통 프로포폴이 먼저 투여된다.

 

애당초 동물 살처분에 석시콜린이 이용되었던 건 싼 가격에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1980년 이후부터는 석시콜린을 이용한 살처분을 규제하는 국가도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전염병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 이런 접근이 적실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선 반론도 존재한다. 안락사용으로 공인된 약물인 펜토바비탈나트륨(Sodium pentobarbital)을 이용하는 것 정도는 검토해 볼 수 있을 듯한데, 이 경우에도 역시 경제성이 문제가 될 테다.

 

구제역 돼지 살처분
<그림 3> 2016년 구제역 확산 당시 돼지를 생매장하는 모습. (출처: 홍영표 의원실)

 

실제 살처분 현장에서 석시콜린의 역할은 '안락사'보다는 '안락살', 그러니까 매일 수백 마리를 직접 처리해야 하는 작업자들의 안전과 효율을 보장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 이것이 옳냐 그르냐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여기선 우선 넘어가자.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석시콜린 투여를 '안락사'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인식이 퍼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런 잘못된 인식*은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

* 가끔 동물 보호소나 단체에서 안락사 목적으로 석시닐콜린을 사용했단 이야기를 듣는데, 개인적으론 이처럼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한 게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Primate Research Institute of Kyoto University, 2003, "Veterinary Care," in Guide for the Care and Use of Laboratory Primates.

 

 

※ 이 글은 2011년 1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갱신된 사실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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