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한 줄 요약: 국가 경영을 네 세력의 견제와 균형으로 나타낸 단순화 요소가 돋보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쉽다.
<Reigns>
개발: Nerial
유통: Devolver Digital
장르: 카드, 시뮬레이션
출시: 2016년 8월
가격: 3,400원
한국어: 지원
난이도(클리어): 다소 쉬움
난이도(100%): 상당히 성가심
플레이 시간(클리어): 3시간 이상
플레이 시간(100%): 15시간 이상
단순함 속에서 빛나는 통찰
시뮬레이션의 묘미는 복잡한 현실을 어떻게 모델화하느냐이다. 가상의 중세 왕국을 통치하는 이 게임은 모든 진행이 승낙/거절, 예/아니요와 같은 양자택일로 이루어진다. 왕국에는 종교, 민심, 군사, 국고라는 네 가지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 세력을 적당히 견제하며 최대한 오래 통치하는 것이 <Reigns>의 기본 목적이다.
이들 세력은 너무 약해져서도 안 되지만, 동시에 또 너무 강해져서도 안 된다. 예컨대 군사가 너무 약해지면 외국이 쳐들어와 왕을 죽인다. 반면 군사가 너무 강해지면 쿠데타가 일어나 왕을 죽인다. 종교가 너무 강해지면 왕을 화형에 처하거나 감옥에 가둬버린다. 너무 약해지면 봉기가 일어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히 단순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다양한 변수도 마련하고 있다. 게임을 진행하며 곡창이나 성벽 등 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데, 이런 시설은 특정 세력이 너무 강해서(약해서) 일어나는 왕의 죽음을 막아준다. 대성당을 짓거나 성전을 일으키는 이벤트는 특성 세력을 지속적으로 높게(낮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를 최대한 응용해 통치를 이어가야 한다.
죽고 죽고 또 죽고
물론 익숙해지기 전까진 죽는 게 일이다. 사실 좀 익숙해지고 나서도 한두 번의 선택 실패로 왕이 죽어 나가곤 한다. 게임 오버 개념이 없기 때문에 타격이 그리 크진 않지만, 게임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집 요소 완성을 위해선 몇 번 정도는 오래 통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그 죽는 것조차 수집 요소의 일부분이다. 게임상에는 총 29가지의 죽음이 존재하는데, 상태 카드와 왕국 게이지에 따라서 다양하게 죽을 수 있다(?). 국고 수치가 최대가 되면 파티 중 맥주에 빠져 죽거나 양궁 게임 중 화살에 맞아 죽을 수 있는데, 만약 이 상황에서 민심이 최하라면 민중들이 궁궐로 쳐들어와 왕을 고문해서 죽이는 식이다.
세력 수치에 따른 죽음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 자연사하거나, 암살당하거나, 병이 들어 죽는 경우도 있으니, 말 그대로 죽는 것 또한 게임의 목적인 셈이다.
하지만 다 운빨이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그래픽과 조작으로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엔 10턴을 채 넘기지 못하고 계속 죽지만, 어느새 늙어가는 왕과 노련해지는 자신의 선택을 보며 점점 게임에 재미를 붙이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타이밍을 넘어가면 게임에 대한 흥미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웬만한 게임이라면 더 재밌어져야 할 시기인데도 말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한계는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게임임에도 모든 선택이 완전한 독립시행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전의 선택이 다음 선택이나 다음 왕의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몇몇 영향을 미치는 듯한 선택도 있긴 하지만(늑대인간, 원로원 의원 등), 이 선택은 그다음 선택과 함께 언제나 세트로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결국 게임의 기본 목적인 오랜 통치는 플레이어의 선택보다는 실상 다음에 어떤 카드가 나오느냐 하는, 지극히 운이라는 요소에 걸려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이 게임에서 선택이란 어느 나무에서 어떤 열매를 딸지가 아니라,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린 채 더 기다릴지 말지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게임에 좀 익숙해진다 싶을 타이밍을 넘어서면 게임이 급격하게 지겨워진다. 특히 선택에 따른 세력의 가감이 완전히 똑같기 때문에 패턴을 외우게 되면 이후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확 줄어든다.
물론 이러한 점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공통적으로 갖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Reigns>는 특유의 단순함 때문에 그 시점이 여타 게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빨리 찾아온다. 거기에 선택을 제시하는 인물의 대사마저도 똑같으니, 플레이어로서는 해당 타이밍을 더욱 빨리 인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게임의 콘텐츠를 최대한 즐기려는 하드코어 게이머에게 이 게임은 금방 지겹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게임에선 수집 요소가 퀘스트처럼 제시되는데, 막상 그걸 제대로 하려고 보면 마땅한 즐길 거리가 없어 마치 일처럼 플레이해야 된다. 그에 비해 아주 간단하게, 20~30분 정도로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이 게임은 상당히 참신하고 흥미로운 작품일 수 있다. <Reigns>에 대한 평가가 꽤 극단적으로 갈리는 건 아마 이러한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테다.
가능성만큼은 분명한 작품
<Reigns>는 장점도 단점도 분명한 게임이고, 플레이어의 성향도 많이 타는 작품임엔 분명하다. 스팀 평가엔 갓겜이라는 평가도, 0원도 가깝다는 평가도 모두 달려 있고 또 동시에 양쪽 모두 공감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게임은 장르로 보나 콘텐츠로 보나 PC보다는 스마트폰에 훨씬 잘 어울리는 게임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플랫폼에선 PC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니 반드시 PC로 플레이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스마트폰으로 구입할 것을 추천한다.
게임으로서 아쉬운 점은 많지만, 참신한 구성과 독특한 이미지를 잘 살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모범적인 인디 게임이라 평하고 싶다. 단순 반복이라는 게임성만 조금 발전시킬 수 있다면, 대사와 선택지, 그리고 이미지를 바꿔 후속작 시리즈를 구성하기에도 적절한 형식이다. 실제로 <Reigns: Her Majesty>(2017)와 <Reigns: Game of Thrones>(2018)라는 후속작이 발매되어 있다. 뒤로 갈수록 선택지를 눈치 채기 어렵고 이벤트의 부피가 커져 더 오래 재밌게 즐길 수는 있었지만, 독립시행으로부터 비롯되는 본질적인 한계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공부한다면 형식과 아이디어만으로도 충분히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도전 과제 팁
웬만한 과제들은 플레이 과정에서 저절로 달성이 되거나 별도의 공략이 필요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따로 신경을 써야 하는 3가지 과제만 다뤘다.
Mummy: 100년 이상 통치한다
오래 통치하는 건 기본적으로 운빨이긴 하지만, 100년을 넘기려면 반드시 호문클루스(항아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60년이 지나면 죽니 마니 하는 시점이 오는데 항아리가 수명을 늘려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때 승낙하면 일단 자연사만큼은 막을 수 있다.
All the cards: 모든 카드를 발견한다
가능한 모든 상황과 맞닥뜨리면 된다. 작정하고 도전하려면 속 터지니 그냥 다른 모든 과제를 완료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리길 바라자. 참고로 진짜 모든 카드를 다 발견할 필요는 없다. 내 경우는 849장에서 과제가 풀렸는데, 개발자의 공식 언급으로는 867장이 필요하다.
도전 과제 현황을 보면 All the cards(2.5%)가 All the deaths(1.2%)에 비해 상당히 높은 달성률을 보이고 있는데, 2017년 3월에 이루어진 카드 추가 패치 이전에는 All the cards 달성이 크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추가된 카드들이 아무래도 좀 예외적인 이벤트 등에 많이 분포하다 보니 이후 시점부터는 All the deaths보다 All the cards가 훨씬 더 달성하기 어렵다.
All the deaths: 모든 죽음을 경험한다
특별한 상태 또는 상황을 만든 뒤 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굉장히 성가시다. 차근차근 작업을 하다가도 특유의 무작위성 때문에 갑자기 죽는 경우가 많을 텐데, 별수 없다. 그저 될 때까지 해야 한다. All the deaths를 노릴 정도면 이미 웬만한 죽음은 다 겪어봤을 테니, 개중에서 특별히 어려운 죽음 6개만 따로 뽑아 봤다.
a. 낙사
교회가 상승하고 국고가 잠기는 '신정' 상태에서 민심이 최대치가 되면 된다. 신정 상태만 유지된다면 어느 왕이든 상관없이 일어난다.
b. 사형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아이 낳기, 혹은 사생아 들이기) 군사가 최대치가 되면 일어난다. 반드시 해당 왕이어야만 발생한다.
c. 독살
왕비가 있을 때, 왕비의 제안에 따라 왕비의 동생을 영토로 들이는 이벤트가 발생해야 한다. 영토에 들인 상태에서 군사가 0이 되면 일어난다. 반드시 해당 왕이어야만 일어난다.
d. 연쇄살인
상당히 성가신 이벤트로, 지하감옥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이벤트가 발생해야 한다. 이 상태에서 군사가 최대치가 되면 일어난다. 시체 발견 이벤트가 자주 일어나는 편이 아닌데, 꼭 해당 왕이 아니더라도 되니 이 이벤트가 발생했다면 최대한 빨리 군사를 최대치로 만들자.
e. 심장마비
연애 이벤트나 마녀의 마법으로 '사랑의 노예'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 상태에서 국고가 최대치가 되면 발생한다. 당연히 해당 왕이어야만 한다.
f. 붉은 개미
다른 나라 공주가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지 말라며 평화 조약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평화 조약을 약속하고, 이후에 성전을 일으키면 발생한다. 해당 왕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제작노트: 이 게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참신한 단순화 요소. 인디 게임 개발에는 자금과 인력의 한계가 상당한 만큼, 단순화 요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가를 여러 세력의 견제로 나타내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걸 네 게이지의 상호작용으로 표현해 게임으로 만든 건 정말 굉장한 아이디어였다.
- 콘텐츠 요소와 수집 요소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게임이 하드코어 게이머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건 플레이는 캐주얼 지향인데, 수집 요소는 웬만한 하드코어 게임 뺨치기 때문이다. 수집 요소의 문턱을 줄였다면 캐주얼 게이머와 하드코어 게이머 양측에게 모두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 스트리밍 용이성. <Reigns>는 인디 게임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유명 스트리머의 영향이 컸을 거라 본다. 이 게임은 내가 직접 플레이하기보다는 누군가 플레이하는 걸 구경할 때 훨씬 재밌는 게임이다.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성공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트리밍에 대한 고민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개성과 특색이 명확한 일러스트. 4색에서 6색 정도로 단순하게 디자인되었지만 시인성이 명확하고 이미지가 확실히 각인된다. 아마 이런 부분이 스트리밍 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된다. 장르적 특성도 생각해야겠지만, 어쨌든 인디 게임에선 그래픽에 앞서 명확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할 거라 본다.
<Reigns>
2016년 8월 | 카드, 시뮬레이션
장점
-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참신한 플레이. 처음 30분 동안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죽을 수 있다.
- 이것저것 깊이 배우고 신경 쓸 필요 없이 바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플레이어의 성향을 많이 탄다.
- 스마트폰으로 대중교통에서 짬짬이 플레이하기에 최적화된 작품.
단점
- 1시간을 넘어가며 게임에 조금 익숙해지나 싶으면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다. 알고 보니 다 반복이다.
- 네 세력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세심한 판단을 해야... 할 필요가 없고 결국은 다 운빨이다.
- 100% 달성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가다를 감수해야 한다. 원래 수집 요소라는 게 어느 정도 노가다성이 있다는 걸 고려해도 이 게임은 과하다.
- 내가 하는 것보단 남 하는 거 보는 게 재밌다.
※ 이 글은 2017년 9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le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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