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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미디어/게임

[리뷰] <프리즌 아키텍트>(2015): 본격 교도소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

by 김고기 님 2023. 9. 16.

프리즌 아키텍트 - 퓨처 테크 팩의 커버
<그림 1> <프리즌 아키텍트: 퓨처 테크 팩>(Prison Architect: Future Tech Pack, 2022)의 커버 이미지. 발매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리 한 줄 요약: 잘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의 교본.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계속하게 된다.

 

<프리즌 아키텍트>


개발: Double Eleven
유통: Paradox Interactive
장르: 시뮬레이션
출시: 2015년 10월~
가격: 31,000원
한국어: 지원

난이도(클리어): 쉬움
난이도(100%): 보통
플레이 시간(클리어): 10시간 정도
플레이 시간(100%): 40시간 정도(DLC 제외)

 

 

내가 시뮬레이션 게임을 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이 게임 내 각 요소가 영향을 주고받는 알고리즘이다. 보통은 이걸 제대로 파악해야 게임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알고리즘을 통해 게임 디자이너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게임 내 사회가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는 우선 그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할 요소를 선택하고 설계할 것이다. 이 선택 작업은 아무래도 현실 사회에 대한 추상화·구조화 작업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시뮬레이션 게임 디자이너는 사회과학자와도 닮았다. <심시티 4>가 도시공학 교재로 사용된다는 이야기를 넘어, 머지않은 미래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모델을 증명하는 게 사회과학자의 주된 연구가 되리라는 생각도 든다. 당장 대형 게임 회사들이 게임 내 사회를 구조화하기 위해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등을 고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협업이 만들어 낼 미래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

 

세세하게 신경 쓴 티가 나는 시뮬레이션 요소

 

처음 리뷰를 준비한 건 30시간 정도 플레이 시간을 기록한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게임의 절반 남짓을 겨우 파악한 것 같다. 그래픽이 단순해서 캐주얼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파면 팔수록 새로운 요소가 나온다. 교도소라는 작은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에서부터, 처벌이냐 교화냐는 가치 판단의 문제까지, 이 게임은 다양한 구조를 표현하고 있고 또 그만큼 플레이어에게 여러 가지 고민과 선택을 요구한다. 디자이너의 세심한 설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게임 내 죄수들이 모두 다 다른 특성을 가진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많은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동일한 종류의 유닛을 전부 동일한 개체로 취급하고 있지만, 이 게임에선 완전히 동일한 개체를 만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교도소 건설 경영이 아니라, 그냥 죄수만 구경하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는 한편으론 개별 유닛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다 탈옥하려는 애도 하나 잡고...

 

프리즌 아키텍트&#44; 감옥 한 동의 모습
<그림 2> 내가 설계한 감옥 한 동의 모습. 플레이 초기에 만든 거라 설계가 썩 효율적이진 않다.

 

죄수들은 각기 평결 정보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 형량과는 또 따로 유죄 인정, 무죄 주장 등의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가끔은 진짜 무죄인 것처럼 보이는 죄수들도 있다. 그 외 각양각색의 재미있는 죄목이 나오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죄목은 게임 복제로 무려 징역 5년 형이다... (심지어 인디 게임은 형량이 더 길다.) 착한 설정 인정합니다.

 

이 게임의 디자이너는 아마 사형제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튜토리얼 격인 캠페인에서도 그렇고, 일반 게임에서도 그렇고 사형 제도의 불합리성을 꽤나 훌륭한 연출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형 집행 후 무죄임이 밝혀지는 이벤트에서는(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기분이 굉장히 묘해졌다. 물론 한 스무 명쯤 집행하고 나니 그때부턴 아무렇지도 않긴 했는데, 또 한편으론 아무리 힘들고 잔인하고 불합리한 상황도 반복되면 이내 익숙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또 기분이 이상했다.

 

프리즌 아키텍트&#44; 사형집행 장면
<그림 3> 게임 내 사형집행 장면. 감옥 내 모든 시스템이 중지되고, 가족과 참관인이 지켜보는 와중에 전기의자형이 집행된다. 처음 보면 꽤 섬찟하다.

 

큰 재미부터 소소한 재미까지 모두 다 잡은 작품

 

많은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다. 일정 수준의 진행을 넘어서면 장애 요소가 줄어들면서 난이도가 급격히 하락한다는 점이다. KOEI의 <삼국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죄수가 늘어날수록 난이도 역시 같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 탈옥이나 난동 방법도 다양해지고, 특히 죄수가 늘어날수록 한 번 폭동이 일어나면 정말 답이 없었다.

 

안정적으로 200여 명의 죄수를 수용한 교도소를 완성했다고 생각한 순간 전력 과부하로 발전기가 터졌다. 복구가 길어져서 죄수들을 한 끼 굶겼을 뿐인데, 선동가(실제 캐릭터의 성격이다)들이 앞장서서 폭동을 일으켰다. 도구를 미리 잔뜩 챙긴 걸 보니 아마 사전에 준비하던 그룹이 있었던 듯하다. 결과는 60여 명의 간수 중 30명이 살해당했고... 시장은 나 때문에 자신이 비난받고 있다면서, 사람이 몇 명 더 죽으면 나를 고발하겠다고(게임 오버라고) 윽박질렀다. 전투경찰을 다수 동원한 후에야 겨우 폭동을 진압할 수 있었지만, 수습 와중에 또 C동 죄수들이 단체로 땅굴을 파서 탈옥했다. 나쁜 놈들...

 

프리즌 아키텍트&#44; 선동가에 노련한 싸움꾼 특성을 가진 죄수
<그림 4> 선동가에 노련한 싸움꾼 특성을 가진 죄수. 이런 죄수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면 정말 골치가 아프다. 미리미리 확인을 잘 하거나, 아니면 그냥 독방으로 확...

 

이 게임의 재밌는 요소 중 하나는 후원금을 내면 게임 내 등장하는 죄수의 이름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스틴 비버부터 시작해 온갖 유명인들의 이름을 다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은근한 재미였다. (등장은 순전히 무작위이다.) 트럼프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이름은 단골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모드가 있는데, 바로 자신이 만든 교도소나 다른 이의 교도소에서 직접 죄수가 되어 탈옥하거나 폭동을 일으키는 "탈옥 모드"다. 사실 전문 탈옥 게임에 비해 게임으로서 완성도는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만든 감옥에서 직접 탈옥을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나저나 내 감옥은 개나 소나 다 탈옥하던데, 막상 내가 탈옥해 보려니 빠져나갈 길이 안 보이는 탄탄한 감옥이더라.

 

프리즌 아키텍트&#44; 탈옥 모드에서 땅굴을 파기 위해 준비 중인 모습
<그림 5> 탈옥 모드에서 땅굴을 파기 위해 준비 중인 모습. 저러다 잡히면 독방에 끌려가는 데다 열심히 파놓은 땅꿀까지 다 막힌다.

 

그 외 이쪽 게임이 다 그렇듯, 단순히 스킨을 바꿔주는 모드부터(소련 수용소 모드, 2차대전 모드 등) 게임을 아예 3D로 바꿔주는 모드까지(아니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구현하는 거지?) 온갖 모드가 다 기다리고 있으니 웬만해선 질릴 틈이 없다. 한참을 안 하다가 다시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게 또 시뮬레이션 게임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특히 2021년부터는 제작사에서도 공식 확장팩을 의욕적으로 발매하고 있다. 각종 교화 프로그램을 추가한 Second Chances(2021), 폭풍을 비롯한 각종 재난 이벤트가 발생하는 Perfect Storm(2022), 좀비의 습격으로부터 감옥과 수감자들을 지켜야 하는 Undead(2022), 각종 미래 기술이 추가되는 Future Tech Pack(2022)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프리즌 아키텍트>는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들거나, 화려한 연출이 돋보이는 게임은 아니다. 너무 재밌어서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 자꾸 생각나고 하고 싶은 게임도 아니다. 그런데 계속하게 된다. 하다 보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간이 엄청나게 지나 있다. 막상 게임을 끄려면 또 아쉽다. 그러다 새벽 3시, 4시가 되기 일쑤다. 샌드박스 시뮬레이션 게임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훌륭하게 계승하고 있기에 가능할 테다. 만약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장르의 팬이라면, 이 게임은 돈 값을 하고도 한참 남으니 꼭 시작해보자. 물론 이쪽 장르 게임이 다 그렇듯, 초기 진입 장벽이 꽤 있다. 그러니 꼭 캠페인부터 진행해보길 추천한다.

 

 

<프리즌 아키텍트>

2015년 10월 | 시뮬레이션

추천
  • 아타리 타이쿤 시리즈, 시에라 문명 건설 시리즈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파볼 만큼 파본 사람
  • <던전 키퍼>, <테마 병원> 등의 시뮬레이션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
  •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특유의 정적을 즐길 수 있는 사람
  •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게임 내 세밀한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사람

비추천
  • 여기저기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캐주얼한 게임을 원하는 사람
  • 명확한 목적을 가진 플레이를 선호하는 사람(캠페인만 즐길 거라면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아쉽다.)
  • 그래픽과 시각 효과가 중요한 사람
  • 게임으로 인한 타임 워프를 피하고 싶은 사람

 

 

※ 이 글은 2017년 1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새로운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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