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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문학

[독일 문학] 베르톨트 브레히트,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by 김고기 님 2023. 7. 3.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베르톨트 브레히트, 『스벤보르 시편』, 1939.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지 압니다!
우리가 아플 때마다 사람들은 선생님이
우리를 낫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선생님께선
사람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근사한 학교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법을 배우셨다고
또 선생님의 지식을 위해 돈을 쓰셨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저희를 낫게 하실 수 있겠지요.

 

저희를 치료하실 수 있나요?

 

누더기 옷이 벗겨진 채
선생님 앞에 서면
선생님은 저희의 벗은 몸을 구석구석 진찰하십니다.
우리가 아픈 이유를 찾으시려면
누더기를 한번 흘끗 보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우리의 몸이나 옷이나
같은 이유 때문에 닳으니까요.

 

제 어깨가 아픈 것이
습기 때문이라고 그러셨지요. 그런데
저희 집 벽에 생기는 얼룩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말씀해 주세요.
그 습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거지요?

 

너무 많은 노동과 너무 적은 음식이
우리를 약하고 마르게 만듭니다.
선생님은 처방전을 내주셨지요.
몸무게를 늘려라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갈대에게
젖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선생님께선 저희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내실 거죠?
선생님 댁의 카페트가 보이네요.
오천 번쯤 진료하면
하나 살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마도 선생님은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시겠죠. 저희 집 벽
습기찬 얼룩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베르톨트 브레히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Rede eines Arbeiters an einen Arzt

Bertolt Brecht, Svendborger Gedichte, 1939.

 

Wir wissen was uns krank macht!
Wenn wir krank sind hören wir
Daß du es bist, der uns heilen wird.

 

Zehn Jahre lang, heißt es
Hast du in den schönen Schulen
Die auf Kosten des Volkes errichtet wurden
Gelernt, zu heilen, und für deine Wissenschaft
Ein Vermögen ausgegeben.
Du mußt also heilen können.

 

Kannst du heilen?

 

Wenn wir zu dir kommen
Werden uns unsere Lumpen abgerissen
Und du horchst herum an unserem nackten Körper.
Über die Ursache unserer Krankheit
Würde dir ein Blick auf unsere Lumpen
Mehr sagen. Dieselbe Ursache zerschleißt
Unsere Körper und unsere Kleider.

 

Das Reißen in unserer Schulter
Kommt, sagst du, von der Feuchtigkeit, von der
Auch ein Fleck in unserer Wohnung kommt.
Sage uns also:
Woher kommt die Feuchtigkeit?

 

Zu viel Arbeit und zu wenig Essen
Macht uns schwach und mager.
Dein Rezept lautet:
Ihr müßt zunehmen.
Da kannst du auch dem Schilf sagen
Es soll nicht naß werden.

 

Wieviel Zeit wirst du haben für uns?
Wir sehen: ein Teppich in deiner Wohnung
Kostet so viel, wie dir
Fünftausend Untersuchungen einbringen.

 

Du sagst wahrscheinlich, daß du
Unschuldig bist. Der feuchte Fleck
An der Wand unserer Wohnungen
Sagt nichts anderes.

 


바깥 이야기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를 처음 접한 순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구조적인 폭력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친, 폴 파머의 『권력의 병리학』에서였다(폴 파머, 2009, 『권력의 병리학』, 리병도·김주연 옮김, 후마니타스, 79쪽). 조금 거칠게 말해 『권력의 병리학』은 이 시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렇게 굉장한 작품이 국내에 번역은커녕 소개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지나치기는 너무 아쉬워서 직접 번역을 해보았다. 영문판은 번역의 어려움 때문인지 6연과 7연의 어감이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조금 무리를 해서 원문을 번역했다.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단연 4연과 5연이다. 『권력의 병리학』에도 이 부분이 인용되었고, 4·5연이 이 시의 전부처럼 알려진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하튼 작품에서 보이는 브레히트의 통찰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굉장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표현은 무언가 사람의 가슴을 꿰뚫는 게 있다. 가장 압권은 마지막 연이다. 집 벽의 얼룩도 똑같은 변명을 한다니!

 

사실 이 번역은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원문은 존댓말로써 2인칭인 Sie가 아닌, '너'라는 Du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 시는 반말로 번역되었어야 했다. 브레히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렇듯, 이 작품에서 노동자는 오히려 당당하게 의사를 꾸짖고 있는 것이다.

 

  누더기 옷이 벗겨진 채
  네 앞에 서면
  너는 우리의 벗은 몸을 구석구석 진찰한다.
  우리가 아픈 이유를 찾으려면
  누더기를 한번 흘끗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의 몸이나 옷이나
  같은 이유로 닳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역을 감수하고 존대를 선택한 것은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했던 『권력의 병리학』에서의 인상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독일어가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중역되면서 발생한 오류라고 생각하지만, 어쨌건 이와 같은 의도적인 오역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추신. 번역에 큰 도움을 주신 김형석(@olewiger)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본문에 굳이 원문을 함께 써둔 것은 다른 분들의 환류와 지적을 받기 위함입니다. 번역에 대한 제안과 의견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이 글은 2013년 3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새로운 번역과 편집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le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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