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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단상

6×5와 5×6은 어떻게 다른가?

by 김고기 님 2023. 8. 8.

※ 이 글은 2013년 10월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논평으로, 당시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했던 글을 블로그를 이전하며 재게시한 것입니다.

 


 

<목차>


  1. 6×5 ≠ 5×6 ?
  2. 곱셈이란 무엇인가?
  3. 왜 교사의 손을 들어주는가?
  4. 어떤 개념을 처음 배운다는 것의 의미

 

1. 6×5 ≠ 5×6 ?

 

초등학교 2학년 시험문제
<그림 1> 2013년 당시 온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의 수학 시험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과 사례를 고려했을 때, 나는 일단 교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두 가지 지점을 미리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수학 이야기다. 맨날 문제만 풀다가 대학에서 처음 학문으로서 수학을 접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수학을 공부하는 건지 철학을 공부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리 있는 표현이다. 수학이란 고도의 추상화가 필요한 학문으로 정의에서부터 출발하여 공준과 공리를 거쳐 비로소 정리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 더하기란 무엇인가? 집합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이것을 정의할 수 있는가? 단순히 문제풀이 놀음이 아닌 학문으로서 수학이 고도로 철학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접근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 교과 과정에서도 발견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수학이라는 체계를 처음 접하기에 이 과정에서 핵심은 필요한 개념을 '바르게' 정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학 이야기다.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 어느 교수의 학문적 성취가 매우 뛰어나다는 건 분명한데 그 교수의 수업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는 바로 무언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교육학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핵심은 교사의 앎의 수준과 학생의 앎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 그렇기에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하고 나아가 그것을 학생에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이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공중에 누각을 지을 수 없듯, 땅을 평탄화하고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리수라는 개념을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꼭 직각 삼각형이 아니더라도 그 넓이를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포인트는 '지금 작업이 어느 과정에 위치하고 있는가?'이다. 뼈대를 짓는 중인가? 보일러를 까는 중인가? 아니면 가구를 들여놓는 중인가?

 

이쯤 오면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다 알 것 같다. 위 사진과 관련된 논란은 이 두 이야기에서 충분히 정리가 된다. 곱하기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것이 이번 논의의 본질이다. 교환법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우선 접어 두고, 곱셈을 처음 배우는 학생과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보자.

 

2. 곱셈이란 무엇인가?

 

위 문제에 해당하는 과정은 곱셈이라는 개념을 '처음'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곱셈은 더하기의 반복으로 정의된다(이른바 동수누가). 즉 5×4는 5+5+5+5이므로 20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4×5는 4+4+4+4+4로서 20이 된다. 순서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곱셈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위 문제는 곱셈이라는 개념을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이 이러한 곱셈의 개념을 '정확히' 습득했느냐를 묻고 있다. 즉, 개미 다리가 6개이고 개미가 5마리이므로 6×5, 6+6+6+6+6이 되어야만 한다. 만약 5×6이 되면 5+5+5+5+5+5로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식이 되고 만다. 이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만약 학생이 해당 과정의 동수누가 개념을 정확히 습득했다면 결코 이 문제를 5×6으로 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곱셈에 있어 교환법칙이 성립한다는 데 있다. 즉, 5×6이 6×5, 즉 6+6+6+6+6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교육은 과정이다. 곱셈이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과연 이것을 알까? 오히려 막 배운 곱셈의 개념에 혼돈만 줄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미지의 영역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누구에게나 처음 하는 두 자리 수 덧셈은 머리가 터질 듯이 어려웠다.) 실제로 동수누가를 통해 곱셈의 개념이 잡힌 이후에는 묶음 방식의 접근, 즉 3개의 주머니에 공이 4개씩 들어있을 때 총 몇 개인가 등의 물음을 통해 4×3이 3+3+3+3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제시한다. 이후에는 현실적으로 구구단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 문제가 곱셈을 '처음' 배우는 과정이며, 개념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된다는 것이다. 교육 과정은 곱셈을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는 모든 계산을 덧셈으로 처리해도 된다고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건 곱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지, 곱셈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quot;두뇌 풀 가동!&quot; 장면이 실린 교육학 논문
<그림 2> 외국 교육학 논문에도 실린 화제의 "두뇌 풀 가동!" 장면. 단순히 곱셈이 덧셈에 우선한다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곱셈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해당 논문도 바로 이 지점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David Tall, Making sense of elemetary arithemetic and algebra for long-term success, 2017)

 

실제 현장에서도 이 과정이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저 시기 이 동수누가의 개념이 정확히 습득되지 않는다면, 이후 배우게 되는 등분 개념에서 막힐 가능성이 크다. 즉 6의 2등분으로서 3과 6의 3등분으로서 2를 구분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접한 사례다.

 

교육의 목적이 문제를 빠르게 풀어내는 것이라면 개념과 과정을 생략하고 구구단과 공식만 알려주면 된다. 실제로 그렇게 선행학습한 학생들은 문제를 매우 빠르고 능숙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머지 않아 본질적인 한계에 마주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났던, 높은 성취를 기록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성적이 급락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개념과 추론 능력을 쌓지 못한 채 문제 풀이법만 배운 경우였다.

 

3. 왜 교사의 손을 들어주는가?

 

여기서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나의 경험과 기억에 따르면, 채점한 교사는 아마 꽤 적극적인 사람일 테다. 웬만하면 귀찮아서라도 그냥 맞다 하고 넘어갈 텐데(요즘 채점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전화부터 하는 학부모들이 참 많다. 일단 저 시험지가 인터넷에 돌게 된 맥락을 추측해보자), 굳이 저걸 틀렸다고 채점한 걸 보니 그 열정을 일단 높이 사고 싶다. 맞다고 할 수도 있는 걸 굳이 틀렸다고 했으니, 분명히 왜 틀렸는지도 자세히 설명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추측이다. 저 사진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여기서 끝이다.

 

행간을 읽어보자. 한 가지 가능성은 저 학생이 이미 5×6이 6+6+6+6+6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경우다. 만약 이 과정을 통해 풀었다면 교육 과정에서는 벗어나지만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이 경우를 틀렸다고 한다면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추론을 해보자면, 이걸 굳이 틀렸다고 했을 정도면 분명히 과정에 대한 심층적인 점검도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틀렸다고 한 다음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채점을 물어보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에 따라 이후 융통성을 발휘해 맞다고 해줬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엄격하게 틀렸다고 했을 수도 있을 테다. 물론 일체의 환류가 없었다면 이건 분명히 큰 문제다. 어찌되었건 만약 내가 부모였다면 이렇듯 개념을 환기해준 교사에게 굉장히 고마웠을 것 같다.

 

다른 가능성은 학생이 이미 구구단을 배운 경우다. 이 경우는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아마 이 경우가 맞다면, 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5랑 6이네? 30 했을 것이다. 아마 (해당 과정에 비해) 고도의 개념을 갖고 있는 우리 성인들도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경우 나는 저 학생을 위해서라도 오답 처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

 

먼저 문제는 단순히 개수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개수와 동시에 '어떻게', 즉 과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서 막 배운 곱셈, 그중에서도 동수누가의 개념이 요구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개념의 적용이 아닌 바로 구구단을 통한 계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모든 교육 과정이 마찬가지여야 하겠지만, 특히 초등 과정의 목적은 단순히 문제의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해석 능력과 추론 능력을 키우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선행학습을 거친 학생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 앞서 언급한 등분에서의 혼란과 a×b와 b×a(a, b는 복소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등 과정에서 a×b와 b×a는 '결과값'이 같은 거지 '식'이 같은 게 아니다. 더군다나 그 값마저 같다는 걸 논하게 되는 건 중학교에 와서의 이야기이다. (당신은 a×b=b×a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5명이 6개의 빵을 들고 있는 것과 6명이 5개의 빵을 들고 있는 상황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이후 등분과 나누기 개념을 배울 때 또 막힌다. 이 역시 내가 실제로 접한 사례다. 대상이 우리 성인이 아니라 개념 자체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이란 점을 기억하자

 

4. 어떤 개념을 처음 배운다는 것의 의미

 

개념을 '처음' 배운다는 건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덧셈을 처음 배운 학생들에게 4+7을 물어본 다음 7+4를 물어보자. 처음 배운 게 맞다면 대부분의 학생이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할 것이다. 두 값이 같다는 것은 덧셈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다른 교육학과 차별되는 초등교육학의 역할이 있다.

 

비슷한 예로 4×7을 계산하는 학생이 7×4를 계산하지 못하는 경우도 굉장히 흔하다. 특히 곱셈을 개념으로 인지한 게 아니라 단순히 구구단을 외운 경우라면, 7단을 외우기 전에는 결코 이 계산을 해내지 못한다. 이것은 학생을 위해서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과 여섯 개에서 두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느냐는 질문에는 바로 대답해도, 6-2를 계산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수두룩하다. 초등 교육의 본질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좀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만들어 보자. 더하기와 빼기라는 개념을 완전히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 이 개념의 추상성은 당신에게 있어 삼수선의 정리가 가진 추상성과 맞먹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개념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굳이 귀찮음을 감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교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우리 교육 과정이 입시에 매몰되다 보니 왜곡되는 측면이 크지만, 과정 자체는 꽤 훌륭하다. 충분히 체계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선행학습이 문제 되는 것도 다 이 과정을 비틀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중고교 교과서를 구해서 읽어보자. 의외로 재미있고 유용하다.

 

최악의 경우는 교사가 학생의 기준이 단순히 채점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오답 처리한 경우다. 이 경우라면 분명히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그리고 내 경험상 그 정도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 없는 교사라면 분명히 귀찮아서라도 그냥 정답으로 처리하고 넘어갔을 것이라 본다.

 

이제 다시 결론을 내보자. 위의 채점이 옳은가? 제시된 사진만으론 확신할 수 없다. 맞다고 해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틀렸다고 해도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학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저 답을 썼는지, 교사가 그 학생의 생각을 어떻게 판단하여 채점했는지 알아야만 비로소 완벽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채점 이후에 어떤 환류가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진만으로 누가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굉장히 한계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간의 경험과 사례에 비춰 봤을 때 섣부르게 저 교사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학생에게 더 유용한 가르침을 제공했다는 전제에서다. 곱셈의 정확한 개념을 환기하려는 교사와 구구단 외웠으니 그냥 넘어가려는 교사, 어느 쪽이 더 훌륭한지는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가 아니었단 추론과 가정하에서다. 누누이 언급하지만 저 상황에서 다른 환류가 없었거나, 학생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오답 처리했다면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과정을 도외시하고 답만으로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수학 교육의 본질을 포기하는 게 아닐까?

 

 

/le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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