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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단상

[후일담] 조갑제 선생님께 『박정희 전기』 받은 이야기

by 김고기 님 2023. 5. 31.

※ 이 글은 2012년 4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새로운 편집과 후일담을 더해 재게시한 것입니다.

 


 

<목차>


  1. 조갑제 선생님께 『박정희 전기』 받은 이야기
  2. 후일담: 10년 만에 쓰는 서평

 

 

모든 이야기는 어느 금요일 밤, 이 트윗에서 시작되었다.

 

조갑제 트위터 1
<그림 1> 김용민의 북한 비판을 수배하는 조갑제 선생님.

 

글쎄, 저 트윗을 보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정말 없나?'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갑제 선생님 정도 되는 분이 웬만한 확신 없이 이런 일을 벌였겠냐는 거다. 이윽고 떠오른 생각. 김용민 후보는 북한을 비판한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 기억 속에는 교수 김용민의 북한 비판이 남아있었다. 물론 조갑제 선생님께서 요구하신 건 북의 삼대 지도자에 대한 것이었지만,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이 세 지도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랴. 그래서 즉시 찾기 시작했고, 곧 찾았다.

 

김고기 트위터 1
<그림 2> 조갑제 선생님께 제보 중인 나.

 

정확히 13분 만의 쾌거였다. 물론 검색과 동시에 나온 건 아니었다. 단순 게시물이나 카더라가 아닌 빼도 박도 못하는 분명한 증거가 필요했고, 주요 언론 기사에서는 확실히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애당초 그렇게 쉬운 거라면 조 선생님께서 수배를 내지도 않으셨겠지. 그래서 조금 발상을 돌려 영상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의외로 몇 개 지나지 않아 해당 발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 내용을 확인해 보자.

 

김고기 트위터 2
<그림 3> 해당 제보 내용.

 

(5:03) 하여간 뭐 지금 김정일 위원장 같은 경우는 외교 수는 아니고, 본인이 징크스가 있어 가지고 열차를 타고 간 거 같은데, 말씀하신대로 2000년 이후 이번까지 7차례 중국 방문 때에 모두 특별열차를 이용했고, 2001년에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24일이나 열차를 탔습니다. 모스크바 가려면 (수행하는 비서들이 힘들겠어요.) 그렇죠. 뭐 하여간 비행기 타면 한번에 아주 OK인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여간 이런 테러에 대한 염려, 공포. 원인이 뭐겠습니까? 누군가 나를 공격할 것이다는 그런 공포, 두려움이 있는 거죠. 그 두려움은 뭐겠습니까. 통치기반이 확실하지 않다. 이런 거죠. 인민들을 얼마나 괴롭혔으면은, 아 나한테 복수를 할 것이다. 이런 초조한 마음들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의 한 표시로서, 이렇게 말하자면은 내부 관리, 통제, 이걸 하려는 것이죠. 김정일 위원장의 바로 그런 모습인데, 장기간 동안 해외를, 자기가 통치하고 있는 나라를 비워둔다. 그 사이에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어떡할 것인가. 우려할만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또 러시아, 이렇게 방문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출처: 조임정, 2011. 8. 23, "김정일, 9년만의 방문...러시아의 카드는?", 《이데일리》.
(지금은 해당 영상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위원장이 인민들을 괴롭혔다... 그 말인가?

 

김고기 트위터 3
<그림 4> 사인북은 못 받았다.

 

그런데 이후 조갑제 선생님의 답변이 없었다. 사실 나는 저때까지만 해도 책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조갑제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욕'은 김용민 후보가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에게 가한 수준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를 들어 항의한 사람이 몇 있었다.) 그러나 조 선생님은 이것을 해당 트윗에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고, 나는 그 틈새를 파고든 셈이었다.

 

김고기 트위터 4
<그림 5> 상품을 독촉 중인 나.

 

한동안 답변은 물론 트윗도 없으시길래 컴퓨터를 끄셨나 했더니 곧장 리트윗을 하신다. 나는 이대로 무시당하고 끝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갑제 트위터 2
<그림 6> 드디어 받은 조갑제 선생님의 답장.

 

그리고 엊그제, 진짜 책이 왔다.

 

박정희 전기 1
<그림 7> 조갑제 선생님께 받은 박정희 전집.

 

박정희 전기 2
<그림 8> 나라가 걱정될때 조갑제닷컴.

 

박정희 전기 3
<그림 9> 8권의 색깔이 이상하게 나왔는데, 실제로도 이상하다. 조갑제 선생님, 이거 불량인가 봐요. 교환해주세요.

 

박정희 전기 4
<그림 10> 한 근대화 혁명가의 비장한 생애.

 

박정희 전기 5
<그림 11> 함께 들어 있던 광고 전단.

 

조갑제 선생님은 왜 김용민 후보의 북한 삼대 지도자 비판 발언을 수배한 것일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기에 아쉽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인식할 수는 없고, 그렇기에 모든 분야에 대한 발언을 할 수도 없다. 괜히 국회가 여러 위원회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잖은가. 당장 나만 해도 동물권이나 탈핵을 비롯한 녹색 감수성이 부족하고, 그렇기에 오히려 이 분야에 대한 말은 가능하면 아끼는 편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안보'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 우선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요한 건 설득이지 사상검증이 아니다. 이런 식의 사상검증은 지지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줄지언정, 다른 사람에겐 환멸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특히나 이번처럼 반례가 나온 경우엔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어쨌든 이번 사건을 통해 조갑제 선생님에 대한 호감이 조금 증가한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최소한 자기가 하신 말은 지키셨으니. 물론 애당초 이런 일을 벌이신 것 자체가 한계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관심 없던 환경문제를 심층취재한 현장기자, 박정희를 끈질기게 추적한 사생기자(?), 5·18 광주에 잠입한 해직기자, 한때 '대기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던 기자 조갑제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하는 씁쓸한 뒷맛과 서글픔이 남는다. 혹시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특별히 굽시니스트의 시사인 만화 116호, 117호를 추천한다.

 

책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냄비 받침으로 쓰라는 분도 계셨고, 반송해 버리라는 분, 불에 태워버리라는 분도 계셨다. 다들 웃자고 한 말씀이겠지만 이런 분위기는 조금 아쉽다. 나는 『맑스주의 역사강의』와 『누가 금융세계화를 만들었나』,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갖고 있고, 이 책들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동시에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도 갖고 있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둘 다 보자는 뜻은 아니다. 개념에 대한 내재적 규정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그 개념에 대한 접근을 더욱 엄밀하고 풍성하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피지기인 셈이다.

 

김고기 트위터 5
<그림 12> 책을 받고 나서 올렸던 트윗.

 

그렇기에 책은 읽어 볼 생각이다. 그것도 열심히. 조갑제 선생님께서 요구하신 건 아니지만, 서평도 쓸 생각이다. 어쨌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러 조사에서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위"로 뽑혔고, 조갑제 선생님은 그 신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후일담: 10년 만에 쓰는 서평

 

호기롭게 서평을 쓰겠다고 했지만, 사실 저 책을 다 읽는데 4년 정도가 걸렸던 듯하다. 억지로 읽은 건 아니다. 그저 저 때(2012~2015)가 내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시기였을 따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상당히 재밌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선 거의 5년 전의 일이라 흐릿한 인상만 남아 있지만, 처음 가졌던 선입견에 비해선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만큼은 분명하다.

 

기자이자 저널리스트 조갑제의 글은 굉장히 차가웠다. 그의 반유신 투쟁·5·18 민주화 운동 취재 기사, 고문 폭로 기사는 의도와 파급효과를 고려했을 때 격정적으로 쓸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책도 그런 식의(자료와 증언, 사실 위주로 차갑게 서술된) 책이라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책은 문학적 기법에 충실한 시나리오에 가깝다. 좋게 표현하면 재밌게 잘 읽힌단 거고, 나쁘게 표현하면 전기보다는 문학 작품에 가깝단 거다. 물론 이 책이 허구를 그리고 있단 뜻은 아니다. 나름대로 자료와 증언, 사실에 기반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기법에서 문학적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단 뜻이다.

 

책을 읽기 전 박정희에 대한 영웅적 미화와 반공 의식에 기반한 반대 세력 폄하가 걱정됐는데,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박정희의 판단과 선택은 마치 일본 대하소설처럼 그의 큰 뜻이 옳았음이 뒤늦게라도 밝혀지는가 하면, 좌익이 개입한(개입했다고 작가가 판단한) 사건에 대해서는 마치 격문을 보는 것 같은 준엄한 표현이 연이어 등장한다.

 

조갑제만큼 박정희에 천착한 저널리스트가 또 없다고 한다.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자료만큼이나 부정적 자료 또한 조갑제 기자를 출처로 하는 내용이 많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를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조갑제는 어떻게든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다리일 듯하다. 다만 그 연구자료에서 이 책은 빠져도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박정희의 일생을 다룬 전기이긴 하지만, 그보다 박정희의 위대함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용비어천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설득당할 준비를 마친 사람에게 이 책은 마치 성서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굉장한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간에 남는 의문은, 정말 작가 조갑제도 책에 표현된 것처럼 박정희를 온전히 "근대화 혁명가"로 보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결정적 순간마다 묘하게 쓴맛이 남는데, 나는 이것이 박정희를 정당화해야 한다는 당위에 복무하고자 작가 조갑제가 기자 조갑제를 억누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 자체가 어떤 거시적 당위에 따라 박정희를 정당화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조갑제 선생 스스로가 자신을 설득한 과정이자 흔적이란 것이다. 언젠가 조갑제 선생님을 다시 대면하게 된다면, 꼭 이 점을 여쭤보고 싶다.

 

 

/le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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