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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2

백제와 중국의 교류 ― 백제 유물에서 발견되는 중국의 흔적들 한성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웅진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사비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백제 유물에서 찾을 수 있는 중국의 흔적들 백제 유적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무령왕릉이다. 고대 왕릉으로서는 극히 드물게 주인이 밝혀진 무령왕릉은 동시에 무덤의 양식이 중국 남조의 것을 따랐다는 점에서 중요한 내용을 시사한다. 당시 백제는 왕의 무덤조차 다른 나라의 양식을 따를 수 있을 정도로 남조의 문화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이처럼 백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 중국과 백제의 교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백제 유물에서 발견되는 중국의 흔적을 찾아볼 것이다. 1. 한성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백제와 중국 왕조의 외교는 372년 근초고왕이 중국 남조 왕조 중 하나였던 동진(.. 2023. 6. 6.
백제는 왜 하필 웅진으로 천도하였는가? 왕도로서 기반 시설이 전무한 웅진 한성 구원군과 웅진 천도 웅진 천도의 주체, 수촌리 유적 백제의 남천, 즉 고마성으로의 천도는 개로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문주왕에 의해 이루어졌다. 문주는 475년 9월, 신라의 구원군과 함께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있는 한성으로 돌아왔으나, 개로왕이 죽는 등 왕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 달인 10월, 문주는 웅진 고마성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문주왕이 왜 웅진으로 천도하였는가를 직접적으로 밝힌 사료는 없다. 그저 배경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요소는 고구려의 침략에 따른 한성의 폐허화, 그리고 여전히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보다 안전한 지역이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 웅진인.. 2023. 5. 5.